성리학의 대가 포저 조익선생 음택지 선인방학형(仙人放鶴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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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대가 포저 조익선생 음택지 선인방학형(仙人放鶴形)
  • 편집국
  • 승인 2008.09.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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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사랑방

▲ 내포풍수지리연구회 이상운 회장

조익(趙翼)1579년(선조12년)~1655(효종6년)조선후기의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 또는 존재(存齋) 오위도총부 부총관 안국(安國)의 증손으로 현령 간(侃)의 손자이고 충추 부첨지사 영중(瑩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찬성 윤근수(尹根壽)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 윤근수의 문인(文人)이다.
임진왜란 중 음보로 정포만호(井浦萬戶)가 되어 1598년(선조31년)군량미 23만석을 운반하는 공을 세웠다.
왜란이 끝난 뒤 다시 수학하여 1602년 25세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 정자에 임명 되었으며 본격적인 벼슬살이를 시작 하였다. 그러나 삼사의 관직을 두루 지내던 중 1611년(광해군3년) 당시 34세 때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정여창 등을 문묘에 배향 할 것을 주장 하다가 고산도 찰방으로 좌천되고 이어 웅천 현감을 역임 하였다.
뒤이어 인목 대비가 유폐되는 사태가 빚어지자 벼슬을 그만 두고 광주(廣州)로 은거 하였다가 지금에 충청도 온양 신창으로 옮겨 살았다.
1623년 인조가 즉위하자 이조좌랑에 임용 되어 신창 도고산(道高山) 아래 모옥(茅屋)을 떠나 다시 조정에 들어갔다.

▲ 구름형상의 안산

뒷날 광주 명고서원 개성의 승양서원 신창의 도산서원 등에 제향 되었으며 저서로는 곤지록 중용주해 대학주해 서경천설 포저집 35권 18책이 전하며 시호는 문효(文孝) 이며 선생은 77세에 고향 광주에서 운명하시니 효종은 시호를 내리고 6월에 대흥(大興) 동화산(東華山) 아래 장례하기 까지 관원을 보내어 치조(致弔) 하였다.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로 예학에 밝았으며 경학과 병법 복술에도 뛰어 났다. 묘지는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33-1번지에 있는데 주산은 동화산 이며 형국으로는 선인방학형(仙人放鶴形) 즉 신선이 학을 놓아 주는 형국으로 안산은 백운안(白雲安) 즉 흰 구름  형상의 산이 있어야 제격이며 소조산(小祖山)은 목형(木形)의 산 즉 신선(神仙)의 형상이어야 되며 주산은 화형(火形)의 산 즉 학의 형상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요즈음 신설된 도로 휴게소에서 바라보면 이와 같은 학의 형상의 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산맥은 금북정맥(錦北正脈)에서 출맥(出脈) 한 맥 하나가 우선(右旋)하여 진입수(辰入首) 을좌신향(乙坐辛向)을 놓았으며 물은 좌수(左水)가 우로 돌아나가는데 좌측 득수(得水)는 서남방 곤방(坤方)에서 시작하여 술방(戌方)으로 물이 나가니 곤득수(坤得水) 술파(戌破)가 되며 사대국지수구오행법(四大局之水口五行法)으로는 화국(火局)에 속하고 십이운성(十二運星)으로는 대입수(帶入首) 대좌(帶坐) 병득수(病得水) 묘파(墓破)가되며 혈장은 결인(結咽)이 잘 이루어진 유혈(乳穴)로 선익(蟬翼)이 뚜렷하고 결인을 잘 이루고난 맥이 뇌두(腦頭)를 세웠는데 뇌두로부터 혈장(穴場)까지 을진맥(乙辰脈)에서 손사맥(巽巳脈)으로 2절을 꺾어 들어오는데 이 모양이 힘차 그

▲ 뇌두와 입수2절맥
생기(生氣)가 더욱 충만 하여 타 묘지와  다르게 느껴진다.
순전(脣前)은 화형(火形)의 학에 부리형상을 하고 있으며 명당(明堂)으로서 갖추어야할 요건은 모두 갖추었으나 선생의 묘지 재혈(裁穴)을 한금정(金井) 내려서 하였으면 하는 것이 아쉬움이다.
좋은 비단 옷감은 구하였으나  그것으로 좋은 옷을 만들지 못하고 자루 하나 정도 만든 격이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신선과 학에 형상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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