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세 옹기장인, “전수받을 후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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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 옹기장인, “전수받을 후대가 없다”
  •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 승인 2017.03.3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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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춘웅 충남무형문화재 옹기장… 열정을 말하다
방춘웅 옹기장의 작업장에 건조중인 옹기들. 원안은 방춘웅 옹기장.

예부터 전해오는 옹기는 철분이 많은 적색 점토가 주원료다. 순수한 천연유약을 사용함으로써 적당한 습도와 공기의 통풍으로 기물 자체가 숨을 쉬며, 독을 빨아들이거나 정제하는 방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옹기는 음식물을 자연 발효시켜 맛과 신선도를 장기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최상의 기물로써 우리와 항상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예부터 김장을 하면 장독대에 담아 집 마당에 묻어둔다. 또한,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서 보관을 장독대에 담아서 한다. 실제 필자가 어렸을 때는 옹기로 만든 장독대를 많이 본 적이 있기도 하고, 집 마당에 장독대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김치냉장고 등 전자제품의 등장으로 옹기소비가 많지 않다. 그런데도 5대째 한국적인 미의식을 담고 있는 그릇인 옹기를 만들며 살아가는 장인이 있다.

바로 홍성 갈산에서 흙과 함께 한평생을 살아가는 금촌(錦村) 방춘웅(충남무형문화재 옹기장 제38-1)씨다. 방춘웅 옹기장은 선조 대대로 이어온 장인으로 옹기와 함께 한평생을 보내고 있다. 옹기는 좋은 흙이 있는 곳을 따라 예부터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충남 서산 운산 여미리가 고향인 장인 또한 경기도 파주, 안성 등을 거쳐 지난 1980년 지금의 홍성 갈산에 정착하게 됐다.

옹기는 제대로 된 흙 고르기, 잿물 만들기, 가마에 볼때기 등 만드는 과정 이외의 것들이 더 많기에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옹기는 짧게 배워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노하우 즉, 내공이 쌓여야만 만들 수 있다. 수십 년간 자신만의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옹기와 함께 해온 방 장인은 지난 2008년 2월 충남도무형문화재 38-1 옹기장 기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어이~~~ 기자양반~~~”
“이거 고구마나 먹구 허여~~”
“이런데 와서 체면 차리면 안되는 거여~~~”
“어서~~오시게~~”
옹기작업장을 둘러보고 있는 필자를 부르며 고구마를 권하는 방 옹기장인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다. 언제나 작업 중에는 한결같이 잿물과 같은 색의 우리 옷과 고무신을 신고 작업하는 금촌(錦村)방춘웅 옹기장은 다음과 같이 홍성에 정착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일찍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 생계를 짊어져야 했으며 옹기작업을 배우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지금의 동성리 백토와 인근 대사리 봉화산의 땔감은 옹기생산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인력수급이 쉬운 지역 특성상 옹기촌이 형성될 수 있는 여건이 좋아 홍성군 갈산면 동성리에 지난 1980년 자리 잡게 됐다.”

방 옹기장은 이어, “지난 80년대는 옹기가 잘 팔렸다. 그때는 직원 10여 명이 근무하면서 항아리로 수입을 나눴다. 그러나 90년대를 거쳐오면서 김치냉장고 등 다양한 전자제품이 생기면서 옹기가 우리 주변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그래도 한평생 해온 옹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며 “지금은 다시 우리 옛것과 옹기의 우수성을 알고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옹기의 좋은 점을 알고 찾는 이들은 많아졌지만, 옹기 기술을 전수받으려는 후대가 없어 안타깝다. 내 나이 지금 76살이지만 집에서 놀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앞으로 계속 하고 싶다”고 옹기 사랑에 대한 애착을 밝혔다.

옹기는 5대째 내려오는 옹기장의 전통비법에 따라 만들고 있다. 전통을 잇지 않으려는 요즘 세대지만 딸, 아들과 함께 뜨거운 가마를 더 뜨겁게 태우는 열정으로 명품을 만들고 있다.

옹기는 크게 다섯 단계를 거친다. 성형(옹기점토), 반건조, 시유(잿물), 완전건조, 굽기(약 1200℃)의 과정을 거쳐서 옹기가 만들어진다. 현재, 방 옹기장에서는 옹기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없다. 98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옹기장의 둘째 딸 방유정씨와 막내아들 방유준 씨가 가업을 잇기 위해 옹기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전수 조교가 되기 위해 옹기기술을 전수받고 있는 방유정씨는 “처음에는 옹기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면서 판매가 되지 않아 전국을 다니면서 홍보를 했다. 배우는 사람이 없어 직접 기술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아버지가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난다”며 “열심히 기술을 전수받아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수하고 싶다. 함께 기술을 전수받는 동생이나 저나 많이 배우고자 노력한다. 든든하게 계시는 아버지가 혹시나 곁에 계시지 않을까 두렵다”고 아버지에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예부터 옹기는 삶의 근본이고 우리의 생활이었다. 옹기를 만드는 금촌(錦村)방춘웅 옹기장인은 오랜 세월 흙과 함께 고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옹기장인들은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 지혜가 가득 찬 옹기, 옛방식 그대로 전통을 고수하는 옹기가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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