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뒤란을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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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뒤란을 거닐다
  • 한학수 칼럼위원
  • 승인 2017.04.11 08:2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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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다. 어떤 일이든지 미리 준비가 돼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을 테다. 속수무책으로 황당한 상황을 피할 수도 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도 알맞추 같은 맥락의 선상에 있다. 해보지 않고 어렵다하거나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에서는 한 일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이 훨씬 더 크다. 지난 과거에선 하염없이 아쉬움을 느끼지만 다가올 미래에선 희망을 본다. 가녀린 잎새와 가붓한 꽃의 흔들림이 자지러질 듯 아름다운 사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의미는 각별한 데가 있다.

인생에서 가치를 실현하는 대상은 시대, 사회, 가정이며 나를 필요로 하는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주도적으로 찾고 실천하며 살아갈 때 의미가 있다. 삶의 보람은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주고도 허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다보면 일상을 가볍게 초월하는 쾌감을 느낀다. 인디언 속담은 말한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라.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 빨리 가려거든 직선으로 가라. 멀리 가려거든 곡선으로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고 말이다. 우리의 꿈과 사랑과 희망이 어찌 손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저 먼 곳에서 만 머무르랴.

실패 앞에 절망할 때도 있다. 인생의 거대한 도전 앞에 어깨가 움츠러들 때도 있다.  살다보면 더러 죽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소박한 안주에 소주 한 잔도 힘이 된다. 낯선 벤치에 걸터앉아 폐 깊숙이 빨아들이는 담배 한 모금도 위안이 될 터이다.

그보다 진정 필요한 것은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이웃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 곁에 있는가.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가. 가던 길을 멈춰 고요히 귀 기울여 보라. 봄바람 타고 기다림이 오붓하게 전해지지 않는가. 꽃향기나 물안개가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애처롭고 쓸쓸하다.

번잡한 세상살이에 참된 삶이란 예속되기보다 자유로움에 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도전에 있다. 자신에 대해 비참하리만큼 엄격해지자. 자신을 사랑한다면 주어진 시간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현재를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그의 과거도 후담이 될 테고 미래 또한 장막을 거두리라. 매사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해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故정주영 회장의 “해보긴 해봤어?”라는 말은 도전 앞에 주저하는 사람이 고이 간직하고 가끔씩 꺼내 볼 촌철살인이다.

크고 작은 일, 중요하거나 사소한 것을 떠나 무엇이든지 진지하게 할 수 있을 때, 모든 일은 다 크고 더 중요한 일이 된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을 새로운 시각과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창조의 의욕으로 불타리라. 재능은 끊임없는 연마와 부단한 노력 끝에 인정받는 행운으로 찾아든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라고 말한 조정래 작가의 말씀은 엘리어트가 ‘황무지’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역설에 좋이 견줄만하다.

바라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간절한 것은 손에 넣지 말라고 했던가. 목표라는 욕심은 가슴 언저리 어디쯤 묻고 차라리 긴 인생여정에 매료되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 한다.

“이 세상 위대한 일은 피와 눈물과 땀의 산물이다. 피는 용기의 상징이요, 눈물은 정성을 뜻하며, 땀은 근면을 나타낸다. 우리는 피를 흘려야 할 때가 있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있으며,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다. 피를 흘려야 할 때 안 흘리면 남의 노예가 되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 안 흘리면 동물의 차원으로 떨어지며, 땀을 흘려야 할 때 안 흘리면 빈곤의 수렁에 빠진다.”
1940년, 처칠이 하원에서 말한 강연의 한 구절이 아직도 찬란한 4월의 봄날을 이길만하다.
새싹이 움트나했는데 저리도 튼실해져 보이니 비로소 4월인 것이다.

한학수<청운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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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운 2017-04-25 10:41:05
우리 교수님
멋지십니다
ㅡ김재운ㅡ

읍읍 2017-04-20 00:49:25
잘읽었어요

딸기 2017-04-19 12:21:00
진짜 공감하고 갑니다.

2017-04-12 12:17:20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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