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0>
상태바
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0>
  • 한지윤
  • 승인 2017.05.19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소영은 어이가 없어서 속이 메스꺼워 지기조차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소영은 자기의 애인역이 될 남자를 보고 통곡하고 싶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자기의 역이 망국지경의 미인은 못될지라도 우아한 여자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 애인인 남자도 상당한 미남으로 배역됐으리라고 생각을 했었고 제법 인테리다운 풍모를 지니고 있으리라고 연상하고 있었는데 턱주거리는 사각으로 네모지게 튀어나왔고 얼굴은 여드름투성이가 아닌가 또한 체격은 운동선수와도 같이 완강한 몸집이었다. 소영은 눈앞이 아찔해 왔다. 게다가 연출자인 J대학 남자는 이상한 연습방법을 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출연자가 자기가 맡은 배역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무대에 오르는 날까지 배역과 배역끼리 서로 호흡을 같이하며 그러한 분위기를 실제로 조정해 둬야 한다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소영은 그 여드름투성이와 실제로 연인사이인 것과 같은 기분으로 연습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첫 번 연습은 토요일 오후였다. 어디 갈 곳도 없다던 연숙이가 연습장에 구경을 왔다.
소영이가 출연하게 되는 제2막 2장은 폐허로 변한 바르샤바였다.
소도구를 맡은 학생이 열심히 포스터컬러를 칠하고 있었다.
“배경이 폐허라면 배경의 세트가 굉장하겠는데!”
연숙이가 말했다.
“그렇지도 않아. 포스터컬러의 물감이 많이 들 뿐이지.”
합판에 칠을 하고 있던 한 학생이 대답했다.
소영이가 맡은 역인 로자가 등장하게 되면 짧은 대화를 애인과 나눈 뒤 두 남녀는 서로 꼭 껴안게 되어 있었다.
“자, 포옹해!”
연출자가 지시했는데 소영과 여드름은 장승처럼 뻣뻣하게 서서 가까이 다가갈 뿐이었다.
“안돼! 안 된다구, 그러면 내가 다시 손뼉을 칠 테니까 서로 꽉 껴안으라구!”
연출자는 베레모를 쓴 머리 아래에 도수가 높은 근시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이 흔들릴 지경으로 소리치며 그가 손뼉을 쳤다.
여드름은 이 번에는 필사적이라는 듯 소영에게 덤벼왔다. 그는 딴에는 남자의 용기를 발휘한답시고 포옹했는데 그 모습은 애인을 포옹했다기보다 프로레슬링에서의 태클처럼 소영을 껴 안았다.
소영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여드름을 포옹하기는커녕 마치 시뻘건 화덕에 올려놓은 오징어처럼 뒤로 몸을 웅크리고 말았다.
“무슨 포옹이 그 모양이야!”
연출자는 화가 나서 베레모를 벗어 던졌다.
“이 장면은 두 사람이 따로 연습해 둬야겠어!”
소영이가 무대에서 내려서자 연숙이가 다가왔다.
“난 그만 둬야 되겠어. 저런 여드름과 포옹한다는 건 끔찍해.
난 이래뵈도 반반한 미남자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거든……“
소영이가 속삭였다.
얼마 후 무대는 다음 장면으로 바뀌고 피난민 가족이 등장했다.
그 뒤를 따라 한 병사가 나타났다. 각본에는 ‘숨을 헐떡이고’ 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는 무대에 나설 준비로 실감을 내기 위해 강당 주위를 몇 바퀴 뛰어 다녔다.
이윽고 무대 위에 올라섰을 때 남자는 너무도 숨이 차서 호흡마저 곤란한 지경이 되어 대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어리석게도…… 저런 고생을 미련하게 사서 할 게 뭐람!”
연숙이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는데 연출자를 바라보니 매우 만족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 날 연숙이가 소영이를 만났을 때 소영은,
“어제 연습이 끝났을 때 연출자에게 그만 두겠다고 말했더니, 한다는 소리가 여드름보다 네가 더 연기를 잘하니까 소모품 담당이나 조명담당의 남자들 중에서 네가 좋아하는 타입의 상대를 골라잡으라고 말하지 않겠어!”
라고 말하자 연숙은 손가락을 탁 튕기며 소리를 냈다.
“잘 됐구나. 어떻든 골라잡으란 말이지?”
“그런데, 얘. 그런 소리를 들으니까 웬지 여드름 녀석이 불쌍해지더라.”
“야! 네게도 착한 자비심이 있었구나!”
“하지만 말야. 역시 이왕이면 아랑드롱 같은 남자에게 안기고 싶어.”
“너, 정말 하늘 모르게 콧대 세우는구나!”

<검은 목걸이>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며칠 전, 학기시험이 끝난 직후에 공연되었는데 그러한 공연 일정은 방학이 시작되면 곧 그 연극을 지방공연으로 가지고 나가기 위해서였다. 지방 중고등학교 강당이나 회관을 빌려 공연을 하는 것이다.
소영은 여드름 녀석이 상대역으로 비위에 맞지 않아 쫓아내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역으로 그녀의 안중에 들 만한 마땅한 상대가 나타나지도 않아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대로 공연을 했다. 정작 얼굴에 화장도 하고 기분이 많이 달라져 소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순회공연이 시작되면 출연자들 중에서는 해마다 으례히 두 쌍 정도의 연인들이 탄생하곤 했다. 그러나 소영은 모처럼 미모의 여인으로 배역을 받아 출연했지만 상대가 여드름투성이어서 도무지 이성으로서의 정이 붙질 않았으므로 가슴이 답답할 뿐이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