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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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2>
  • 한지윤
  • 승인 2017.06.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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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둘이 씻고 나오자 영훈이가 교대해서 들어갔다. 넓은 방에는 이불이 세 채나 나란히 깔려 있었고 그 끝 쪽에 소영이가, 가운데 자리에는 화인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소영은 말 없이 팔베게를 하고 누워 천정을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흐르는 것 같은 바람소리와 쉼 없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 왔다. 창살의 그림자를 뚜렷하게 비추고 있는 달빛이 어두컴컴한 빛을 뚫고 들어오기라도 하듯이 비쳐 들었다.
얼마 후에 영훈이가 방으로 돌아 왔다. 그는 타올을 비닐봉지에 넣고 나서 전등불을 꺼도 되느냐고 소영이에게 물었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전등의 스위치를 끄자 달빛이 방 안에 쏴악 밀려 들어와 가득 찼다. 영훈이는 자기 자리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방안은 마치 달빛으로 둥실 떠 있는 듯 했다.
소영은 달빛 속에서 화인이 누워 있는 건너편의 영훈이가 어떤 그리움의 대상처럼 여겨졌다. 조금 전 얼핏 달빛에 반사되어 보인 그의 얼굴은 어딘가 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문득 소영의 머리에 그 밉살스러운 여드름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이영훈과 포옹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멋지고 자연스럽게 포옹할 수 있을 것인가. 소영의 가슴은 아름다운 달밤을 연극속의 바르샤바의 폐허의 밤과 바꾸어 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삽화·신명환 작가


“소영씨.”
영훈이가 나즉이 불렀다.
“예?”
“어쩌면 소영씨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웬지 기억해 두고 싶은 분이라고 생각되요. 비록 소영씨의 이름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래요?”
소영의 가슴은 까닭도 없이 물결이 쳤다.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나 만나야지만 사람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이상하군요.”
“소영씨는 무얼 좋아하세요?”
“난 내가 없어질 정도로 자연 속에 묻히는 게 좋아요.”
“로맨틱 하군요.”
“전 소영씨와 같은 사람과 얘기를 나누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 있는 편을 좋아합니다. 설령 사막 한 가운데라도 좋아요. 굶어 죽은 몸을 새들이 쪼아 먹고 가버린 다음 바짝 마른 내 뼈가 모래 속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것도 괜찮죠.“
그 때 소영은 조용한 숨소리가 옆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화인이 잠자는 소리였다.
그 순간 소영은 그녀답지 않게 가슴이 여자다운 극히 너무나도 여자다운 승리의 깃발 같은 기쁨으로 펄럭였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영훈이와 한 방에서 얘기를 하며 누워 있는데도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는 그 순수한 화인이, 그 여자아이가 저렇게 잠을 자고 있다. 그것은 화인이 동반하고 있는 영훈에 대해서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중명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 영훈과 진지하게 만나 봐야겠다고 소영은 생각했다.
서로가 어둠 속에서 숨어 들어온 두 마리의 귀신처럼 만날 것이 아니라, 이 번에는 대낮에 밝은 태양 아래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자 소영은 연출자의 연극 연습방법이 느닷없이 가슴에 떠올랐다.
“이젠 그만 잡시다. 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습니다.”
영훈이가 그렇게 선언한 것은 10시 조금 전이었을까.
조용하게 산새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나무의 잎사귀들이 서로 뭐라고 몸을 부비며 속삭이는 소리, 풀벌레들이 끊임없이 울어대는 소리 속에서 소영이의 눈은 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해져서 잠이 오지 않는다.
영훈이는 화인의 뒤를 따라 가듯이 규칙 바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한 후에도 소영은 얼마동안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곤 했다.
소영은 도저히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없어 장짓문을 열어 봤다.
영훈이의 얼굴에 정면으로 달빛이 흘러 들어와 비추는데도 그는 눈을 감은 채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알지 못할 질투와 고독감이 소영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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