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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화해를 기원하는 추모제한국전쟁 67주기 ‘국민보도연맹’ 홍성 제10차 추모제에

아버님들이 제삿날이 한 날 한 시인 한국전쟁 유족회 형제들이 열 번째 추모제를 올리고자 이곳 비극의 용봉산 추모공원에 모였습니다. 제삿날이 같으니 우리는 형제입니다. 국가 공권력이 보도연맹원들과 부역혐의 양민들을 불법 학살한 지 67주년이나 됐습니다. 논밭에서 끌려가신 뒤 이곳 용봉산이나 광천읍 담산리 꿀꿀이산 폐광, 그리고 전국 곳곳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서 원혼이 되신지 67년입니다.

반만년 민족사 최악의 학살, 그 국가범죄 앞에서 우리 유족들은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밝은 세상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오늘까지 왔습니다. 총소리에 산천초목도 몸서리치던 그날 이후, 살아남은 우리 유족들은 억압과 감시, 차별과 연좌제의 암흑을 벗어나고자, 국가범죄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 국가사과, 유해수습 등을 위한 과거사특별법 부활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친일파적 집권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과거사특별법을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그리고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어서, 구천을 떠도는 영령님들과 우리 유족들의 맺힌 한이 풀릴 날을 기대하게 됐습니다. 오늘 이 시각도, 한국전쟁유족회와 지원 단체, 국회의원들이 국회 대강당에서 그 특별법 제정과 관련해 뜻과 힘을 모으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친일하면 대를 이어 부귀공명을 누리고, 독립운동하면 멸문지화를 당하거나, 남은 가족들은 구차스럽게 목숨을 부지하는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제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독립운동하신 아버지가 그리도 야속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그러다가 안중근 의사와 그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독립운동가의 후손임을, 오늘의 고통이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아버님을 우러르게 됐습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일본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합니다. 체포돼 재판을 받는 안중근 의사가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는 모친의 편지를 받습니다. “네가 만일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공소(상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만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돼 이 세상에 나오너라.” 하는 내용입니다. 제 생애에 이런 감동을 준 글은 처음입니다. 안증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봄비 내리는 아침, 모친이 지어 보낸 수의를 입고 여순 감옥의 교수대로 걸어갔습니다.

고통스러운 세월이 그대로 흘러, 수많은 유족들이 밝은 세상을 누려보거나, 그 세상이 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 백발들에게 남은 황혼은 그래서 더 짧고 안타깝습니다. 작년에 홍성유족 이종민 이사와 제가 노력해 광천읍 담산리 꿀꿀이산 폐광에서 21분의 유해를 발굴하고, 김용일 위원장의 헌신으로 그 유해를 저 철제컨테이너에 모셔 이곳에 안치했습니다. 국가가 외면하는 일을 뜻있는 민주시민사회단체와 민간모금으로 시작했고, 부족한 예산은 김석환 홍성군수, 이상근 군의회 의장, 최선경 군의원님들의 지원과 배려로 여기까지 이르렀기에 유족들은 거듭거듭 감사드립니다. 바라옵건데, 저 21분이 꿈에도 그리는 유족들 품에 안겨 영면하시도록 유전자 감식비 한 번 더 도와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작년 발굴과정, 언론보도와 관계하신 분들의 헌신 내용을 엮은 책이 아버지 어디에 잠들어 계십니까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유족회의 피맺힌 여망을 만천하에 밝혔습니다.

첫째, 보도연맹원 등 학살 범죄를 교과서에 수록하고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을 실시하라는 요구입니다. 역사정의 확립만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미래를 담보합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기록을 달빛에 말리면 신화가 되고 햇빛에 말리면 역사가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둘째, 국가는 그 수십만 영령들 추념(모)일을 지정하고, 추모관을 건립하라는 요구입니다. 지나간 국가범죄가 미래 사회의 교훈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세월호 사례를 봅니다. 국가가 직접 세월호를 침몰시키지 않았지만, 세월호를 인양해 시신을 수습하고 사고의 원인을 밝혀 다시는 이런 참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입니다. 하물며 민족사 최대최악의 동족학살 국가범죄에 관해서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마지막으로, 중요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우리 한국전쟁유족회와 안희정 도지사의 합의로 진행한, 한국전쟁기 민간인 피해 미신고자의 신고기간을 올해 말까지 연장했으니, 이 사실을 유족들에게 널리 알려 해당 시·군·구 자치행정과에 신고해 유족의 여한을 풀도록, 더 이상 미신고자로 남아 고통을 받지 않도록, 명예회복의 기회가 왔음을 널리 알려 주십사 당부합니다. 영령님들을 밝은 세상으로 모셔내고, 평생 짓눌려온 유족들의 한을 치유해, 용서와 화해, 상생과 번영의 대한민국, 통합과 희망의 새 시대로 나아가자는 충정으로 추모제를 갈음합니다. 그리해 이 용봉산 추모공원이 진정한 평화와 인권의 성전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일주일 전 작고하신 황선항 홍성유족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 분의 노력으로 이곳에 홍성유족회 추모공원이 조성됐음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최홍이<홍성유족회 유가족, 전 서울시교육위원>

최홍이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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