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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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65>
  • 한지윤
  • 승인 2017.06.2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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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점심때까지 푹 잠이나 잘 자라구, 그 동안 자동차 좀 빌려 주겠어?”
소영이 말했다.
“그래, 드라이브해. 바다에 빠지진 말고……”
게슴치레한 눈을 비비며 빨간 티셔츠를 입은 녀석이 자동차 키를 소영이에게 건네주었다.
소영이는 얼마 전 자동차 운전면허를 땄으므로 운전 솜씨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잠이나 잘까 보다. 네가 운전하는 차타고 드라이브하다 처녀귀신이 될라!”
연숙은 소영의 실력을 믿을 수가 없어 망설였는데 소영이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숙을 차 안으로 밀어 넣고 엔진의 시동을 걸었다.
스타트는 쾌조였다.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길은 운전교습소에서 만들어 놓은 코스를 달리는 것보다 쉬웠다. 소양강 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소영은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이 근처 어디에다 차를 세워 두고 산책 좀 하지 않을래?”
하고 말했다. 아직 호텔에 들어갈 시간은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 호텔에 도착한다고 해도 두 남자는 아직 잠에 골아 떨어져 있을 것이다. 연숙이가 미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소영이가 모는 차는 벌써 언덕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연숙은 혹시 차바퀴가 모래에 빠져 운전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을 때 낡은 자동차는 이미 엔진이 멎어 버렸다. 소영은 다시 시동을 걸고 악세레다를 밟았으나 차의 바퀴는 헛돌며 전진도 후진도 하지 못하고 모래를 파내며 뿌려대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지, 이거?”
연숙이 곁눈질로 소영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글쎄…… 어떻게 되겠지.”
소영이도 마음속으로는 난처했지만 연숙의 비난을 태연한 어투로 막았다. 젊은 여자가 둘씩이나 곤경에 처해 도움을 구할 때 모르는 척 하는 남자는 없다고 생각하며 소영은 한 편으로 배짱이 생겼다.
 

삽화·신명환 작가


연숙이와 소영이가 모래 속에 빠진 차에서 내렸을 때 우연이긴 했지만 숲의 울타리 저 너머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울타리 너머에는 1930년대쯤에나 건립된 듯 한 낡은 양옥집이 한 채 서 있었던 것이다. 양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방갈로 스타일 쪽에 가까운 양식의 집이었다.
그 낡은 양옥집에 어울리기라도 하듯 황량한 정원에는 제멋대로 자란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고 그 곳에 한 남자가 낡아 빠진 등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등의자는 망가지기 직전의 느낌을 주었으며 색깔도 퇴색했고 의자의 다리에 감겨 있던 등껍질도 거의 풀려 있었다. 이 분위기는 다분히 고색적이어서 여자들이 좋아할만 했다.
“저 사람 괜찮아 보이는데……”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연숙이었다.
사나이는 36~7세 정도로 보였으며 청년은 아니었다  검은 순모 와이셔츠에 회색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기름기가 없었다. 제법 미남으로 생긴 얼굴에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맑은 눈동자를 지니고 있는 무릎 위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나이의 발밑에는 영국산 털이 긴 개 콜리가 바짝 다가앉아 있었다.
“저 남자에게 수작을 붙여 볼까?”
소영이가 연숙에게 속삭였다.
“좋아, 내가 할께”
연숙이가 나서려고 하는 것을 소영은 말렸다.
연숙은 용기가 있고 진실성이 있었으므로 그런 면에서는 결점이 없는 여자이긴 했지만 때로는 너무 용기가 지나쳐 일을 망쳐 놓을 우려도 있었던 것이다. 연숙에게 맡겨 놓으면 자칫, 세련되지 못한 큰 소리로 ‘아저씨’하고 부를 것이 뻔한 일이다. 그럴 경우 일의 실마리가 흥미 없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해변 가에 가서 조개나 주운 후에 해 보지 않겠어?”
소영이는 연숙을 진정시켰다.
해변가에는 40전후의 깡마른 여자가 한 사람 있을 뿐 파도만이 제 홀로 모래를 씻어 가곤 했다. 조개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개라고 생각해 주워 보면 동그랗고 매끈한 흰 크림통 뚜껑이기도 했다.
그 때 깡마른 여자가 다가왔다.
“서울에서 오셨어요?”
<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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