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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오누나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1923년에 발표된 김소월의 시 ‘왕십리’의 앞부분처럼, 한 닷새 더 왔으면 좋았겠지만 아무튼 비가 왔다.

기우제에 감동한 옥황상제의 눈물이든 북태평양 고기압을 밀어낸 장마전선의 영향이든지 간에, 메마르고 거칠고 막막하고 바짝바짝 타들어가기만 하던 대지에 정말 긴요한 비가 내렸다.
연일 계속되던 제한급수의 위기와 애처롭던 들판의 위기에서 벗어나니 곳곳에 활력과 희망이 넘쳐났다. 역재방죽의 가시연들은 넓어진 저수지 유역으로 이파리를 슬금슬금 벌리고 있었다.
길게만 자라던 뚝방 시냇가의 풀들은 모처럼의 물살을 즐기며 하늘하늘 옆으로 누웠다.

들녘의 농부들은 신바람에 옷 젖는 줄 모르며 논의 물꼬를 조절하고, 질펀한 밭뚝셍이(밭둑) 진흙사이로 장화자국이 낭자해도 해질녘까지 비닐을 만지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도민요 ‘비 타령’의 가사는 이런 농부의 심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어디를 갔다 이제 오나/ 옥중 춘향이 임 만난 듯/ 칠년대한에 단비로세/ 볏잎이 훨훨 영화되니/ 어찌 아니 반길소냐/ 비를 맞아도 나는 좋고/ 밥 아니 먹어도 배가 불러…’

우리가 비에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나의 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아버지가 농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에 모든 것을 의존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그리 오래된 기억이 아님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태초에 천지(지구)가 생겨나자마자 끝도 없는 비가 내린 후, 빗물 속에서 생명체가 생겨나고 인류가 진화하였으며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인류 최고의 이집트문명이 발생되었다.’

농경문화의 기원을 한 줄로 억지스럽게 정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물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물이 있었기에 인류는 농업을 거쳐 여기까지 발전한 것이다. 물은 농민에게 있어 목숨과도 같은 존재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기존의 보(洑)아래 만석보(萬石洑, 전북 정읍에 있는 저수지)를 다시 쌓고 물세를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갖은 폭정과 과중한 세금 부담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마침내 일어나 만석보를 때려 부숨으로써 동학혁명의 발단이 되었다(1894년). 땅은 곧 인심이기에 땅이 마르면 인심도 마른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적당한 물은 세상을 꽃피우지만 과도한 물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기도 한다. 아파보아야 건강했을 때의 소중함을 알고, 별일이 있어봐야 별일이 없을 때의 행복을 알게 되듯이, 가물어 보아야 비의 중요함을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번 가뭄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물을 물쓰듯 해온 헤픈 습성과 무심코 흘러가버리는 물에 관대했던 시선을 거둬야 한다. 물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물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인간과 자연에게 너무나 소중하지만 기약 없이 찾아오는 ‘야속하고’ ‘고마운’ 손님, 자연의 선물인 ‘빗물’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남민 주민기자  cnm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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