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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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79>
  • 한지윤
  • 승인 2017.10.02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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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걸 헌팅’을 하지 못한 남자는 무능과 무력의 판정패를 당해야 했다. 이런 식의 친구간의 게임을 이제는 거꾸로 여자들 편에서 거침없이 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사귀고 또 부담감 없이 헤어져 버리는 즐거움의 만세를 얼마든지 외쳐도 좋은 것이었다. 이 세대에 있어서.
“그래, 해도 좋긴 하지만……”
소영은 싫다는 의사표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연숙은,
“난 싫다,”
하며 꽁무니를 빼듯 반대하고 나섰다.
“왜?”
“난 방법을 몰라……”
“걱정 말아. 남자와 여자뿐인 땅에서 부닥치면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거야.”
희영은 경험자인 듯 자신만만해 했다. 결국 연숙이도 게임에 가담하기로 하고 그들은 신촌으로 가서 일단 각기 헤어졌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라틴 뮤직이 전문인 <카크타스>뮤직홀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육상 선수나 되는 양 출발할 때 소영은 세 사람의 시계를 똑같이 정확하게 맞추어 둘 것을 제안했다.
“지금 5시 36분 40초”
“넌 무슨 헛소리 하는 거니? 겉모양은 스위스 최고급 시계 같지만 하루에 무려 20분씩이나 늦어지는 고물을 팔뚝에 걸고 다니면서……”
연숙은 소영에게 공격했다.
“아무라도 헌팅을 해서 제 시간에 나타나야 돼!”
소영은 연숙에게 선언하듯 말했고 세 사람은 동시에 뿔뿔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소영과 희영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뒤 연숙은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언뜻 정신을 차려 슬슬 시작해 볼까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앞에 큰 식료품점이 눈에 띄었다. ‘토요일 바겐세일’ 이라고 쓰여진 방문이 나붙어 있었고, 여자들이 들락거리고 있었으므로 연숙이도 덩달아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지하매장은 냉방이 돼 있지 않아 찌는 듯이 무더웠다. 이런 곳에서 남자를 발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연숙이는 사람들에게 밀리면서도 무심코 육류매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는 앞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아기를 업은 30대 전후의 여자였다.
 

삽화·신명환 작가


오랜 동안 입고 세탁을 해서 색이 바랜 원피스를 입고 구멍이 나있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잔등에 매달려 자고 있는 어린애는 겨우 돌이 지났을 정도로 보였으며 머리가 거의 거꾸로 매달려 있다시피 업혀져 있어 혹시 피가 역류하지 않을까 염려될 지경이었다. 연숙은 뒤에서 애기의 머리를 받쳐 주었지만 손을 놓으면 다시 밑으로 쳐졌다.
여자의 목둘레에서 이마까지 마치 붉은 가루를 뿌려 놓은 것같이 번져있는 땀띠는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심했다.
연숙은 시골에 있을 때 동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의 아주머니 얼굴에 이 정도로 심하게 펴져 있는 땀띠를 본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땀띠가 아니라 가난의 상징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아직도 이런 땀띠를 돋아나게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놀라움이었다.
그 때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연숙은 애기를 업은 여자의 손이 옆에 서 있는 여자의 핸드백으로 뻗어가서 입을 벌리고 있는 핸드백의 가죽지갑을 꺼내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그 순간 그 손은 인간의 손이라기보다 검붉고 바싹 마른 원숭이의 손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땀 냄새에 젖은 타올을 구멍 뚫린 쇼핑백에서 끄집어내어 이마에서 목으로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땀을 씻었다.
땀띠의 여자는 그것이 도둑질을 했다는 것에 대한 유일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도둑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설령 얼마쯤 표정의 변화가 있었다 하더라도 심하게 퍼져있는 땀띠 때문에 섬세한 감정의 움직임은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주머니! ”
연숙이가 불렀다.
“저하고 잠깐 얘기 좀 해도 괜찮을까요?”
여자는 다시 한 번 때가 묻은 타올로 얼굴과 목덜미를 닦았다. 
<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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