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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삶, 행복한 죽음

누군가와의 이별은 쓸쓸하다. 사랑했던 이성(異性)과의 이별도 그러하지만 부모, 정신적 스승과의 영원한 이별은 쓸쓸하다 못해 처연(悽然)하다. 늘 옆에 있을 것 같았던 그 사람의 사라짐은 죽음 자체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다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해 어느 늦가을 어머님이 이 세상을 하직하셨고, 올해는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 스승이 먼 길을 떠나셨다. 내 육체와 정신을 형성해 놓은 두 분의 빈자리는 휑하다 못해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두 분의 죽음은 내 삶의 끝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거울에 비친 탄력을 잃은 피부, 하얀 수염과 머리카락은 살아온 날보다 남아 있는 날이 훨씬 적을 것임을 말해준다.

진시황(秦始皇)은 불로장생을 꿈꾸다가 불로초를 캐러 사람을 멀리 보냈고, 병마용과 능(陵)도 만들었지만 쉰 살을 넘기지 못했으니 그의 헛된 욕심만 증명했을 뿐이다. 죽음이 있기에 현재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돈, 명예, 욕심을 채우기에 바빠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사람은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 쉽지 않지만, 고승(高僧)들은 가장 멋진 죽음의 방법으로 ‘천화(遷化)’를 택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저 세상으로 떠날 때가 되면 새벽녘에 신발을 댓돌에 가지런히 놓고 산속으로 있는 힘을 다해 올라가 깊은 산중에서 나뭇잎을 덮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도 닦는 일에 용맹정진해야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다. 내가 죽고 싶은 날, 죽고 싶은 방법으로 죽는다면 아마 도 통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황급히 떠나고 만다.

평생, 죽음의 문제를 천착(穿鑿)한 작가는 톨스토이가 아닐까 싶다. 그는 백작가문 출신이었고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90권짜리 전집이 나올 정도로 많은 소설을 썼지만 작품의 주제는 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직접적으로 잘 나타난 작품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다. 러시아에서 이반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김서방 정도에 해당한다니 아마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문제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45세의 판사로서 불치병에 걸려 죽음과 마주한다. 법원에 그가 죽었다는 공지문이 나붙지만 진정으로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반이 죽고 나면 그의 자리에 누가 오게 될 것이며, 봉급은 얼마가 될 것인가에 법원 사람들은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이반도 한때는 상가(喪家)에 가서 빨리 문상하고 돌아와 브리지 게임을 하고 포도주 한잔 마시는 것을 삶의 기쁨으로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었던 것인지 병석에서 곱씹어 본다. ‘즐거움의 느낌(sense of joy)’만 있었을 뿐 ‘진정한 즐거움’은 아니었다고 병석에서 생각한다. 지금 법원의 동료들은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복제하여 그것을 진정한 기쁨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반은 자신을 간병해주는 게라심과 있을 때 만 편안함을 느낀다. 그는 자신을 보듬어 주고, 바라보며, 아이처럼 대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그런 수고쯤은 해줘야 한다고 별로 가진 것과 배운 것이 없는 게라심은 삶을 이해한다. 이반은 그동안 자기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딸과 아내와 화해하며, 이웃에 연민을 보낸다. 이반은 죽음을 앞두고 ‘보고, 만지고, 느끼고, 아파해주고, 용서해주는 것만 있어도 삶이 이토록 좋으며, 얼마나 기쁜가!’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연말에 쑥스럽지만 불편한 형제와 이웃에 손을 내밀어 보는 것이 ‘기쁜 삶’을 살아가는 방편이 아닐까 싶다.

임종 직전의 화해와 용서보다는 훨씬 일찍 그것을 깨달아 ‘아! 기쁘구나’를 일상에서 느끼는 것이 ‘행복한 죽음’에 이르는 길일 것이다.

김상구<청운대학교 대학원장>

김상구 칼럼위원  sangkoo@chungw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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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왕 2017-12-15 12:01:24

    먼지 뿌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닥 몇줄기 햇살에 넓죽 절을하게되는 한해의 이시각에 또 나는 서있다. 난 아직 숨을 쉬고있다. 오랏줄 받으라는 명령을 기다리며...일상으로 잊었던 원초적 질문에 이 귀한글을읽고 잠시 상념의 날개를 퍼덕여 본다.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이승의 끈을 단단히 동여매고브지만 그날을 편하게 기다려야겠다. 그냥 지금 오늘 평온하기만을 바라며...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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