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는 연예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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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는 연예인이 아니다
  • 한학수 칼럼위원
  • 승인 2017.11.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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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한 선거공약도 공익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 재검토 하는 게 맞다. 공무원 17만 명을 증원해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정부안은 쉬이 납득이 안 간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열어 공무원의 임금이며 연금을 주겠다는 것도 논리의 부재다.

정부안대로라면 국민이 무려 300조 원 가까이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통계다. 대통령의 공약인 일자리 80만 개 창출을 위해 밀어붙인다는 여론이 높다. 사회보장제도 또한 재정이 감당할 수 있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정부정책이 포퓰리즘이면 안 되는 이유다.

포퓰리즘의 시각은 정치 지도자가 정치적 편의나 기회주의적 생각으로 활용하고, 실제로는 비민주적 형태와 독재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반면 대중에게 호소해 다수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지를 얻어내려 노력한다는 점, 다수의 지배를 강조하고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맥락이 닿는다.

일이나 정책의 실패 원인은 대부분 고정관념에 젖어 있거나, 과거를 답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융통성 없는 기계적인 움직임도 이유다.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와 다양한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백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행동은 자아를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것은 곧 한 사람의 잠재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자신이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관점과 방법, 또는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보는지 밝혀야 한다. 사회 현상이나 사회 문제는 동일한 문제라고 해도 각자가 지닌 사회·경제적 지위나 처지에 따라 관점과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편법을 쓰고 탐관오리가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의미로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정치란 무엇이고 정치가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대중이 정치인의 한계를 자주 목격하는 일은 슬프다. 나쁜 말이나 비판은 불길 속에 던져 넣는 장작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위정자는 국가와 시민은 물론 그 자신에게도 불행이다.

다른 사람의 호의나 도움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빚을 졌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그 관계는 결속력이 있다. 그럼에도 충성심은 얻었다가도 잃는 것이며, 민심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찾으려고 한 것은 선각자의 모습이다.

‘처마 밑에 있으면 사람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속담이 있다. 숙여야 할 때 숙일 줄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사람의 마음은 그 실체를 알기가 쉽지 않다. 만약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거나 굽힐 줄 모른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절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없다. 국민을 위해 대통령을 세우는 것이지, 대통령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물은 배를 뜰 수 있게 하지만, 배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고집스럽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랫사람들을 분노케 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말이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국민의 마음을 편안히 해주고 가까워져야 한다. 국민이 그의 진심을 알면 그를 존경하고 따를 것이다.

위정자는 굽혀야 할 때 굽힐 줄 알고 펼쳐야 할 때 펼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을 때리더라도 얼굴은 피하고 남을 비난하더라도 단점을 들춰내지 마라’는 속담이 있다. 국민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려면 최대한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유토피아는 평등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유토피아는 인문주의적 합리적 이상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곳이다. 나라의 힘은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손자병법’에서 ‘임금은 분노하여 군사를 내지 말고 장군은 일시적인 화를 이기지 못해 돌격하지 마라’고 한다. 이것은 이성의 힘을 발휘하여 감정을 조절해야만 경솔한 행동과 실수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공공의식이 있고 공감형 리더십을 갖춘 통치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학수<청운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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