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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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4>
  • 한지윤
  • 승인 2017.12.0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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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처음 증상을 느꼈을 때 약산성의 질 세정에 의해 나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안 되면 질 좌약에도 부작용이 없고 임신 중에도 사용할 수 있는 니스타틴을 3주 정도 복용하거나 좌약으로 처방해야죠. 완전히 나았다가도 생리 후 재발하는 수도 있죠. 발가락사이에 무좀 같은 것이 생겨서 피부과에 가서 검진했더니 캔디다 균이 발견된 적도 있었구요.”
“항생물질 약을 먹었다고 해서 이런 염증이 생겨난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한박사는 그 물음에 대해서는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
“집에 목욕탕이 있죠?”
“네‥‥‥ 하지만 지난주부터 수리하고 있어서 옆집 목욕탕을 임시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럼. 그 곳에서 옮았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뜨거운 목욕탕 속에서도 균이 살 수 있나요?”
“물론 살 수 있지요. 캔디다라든지 트리코모나스라는 균들은 사람들이 간신히 들어 갈 수 있는 정도로 뜨거운 물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다.”

인간은 결국 수 없이 많은 종류의 미생물과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현미경 아래서도 겨우 보일 듯 말 듯 한 이런 미생물에 또한 인간은 항상 도전을 받고 괴로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인펙션이란 단어는 감염이란 뜻이다.

한박사는 의과대학 시절에 트리코모나스 원충에 의한 염증은 인펙션이라 하지 않고 인페스테이션이라 한다고 배운 적이 있다. 인페스테이션이란 이를테면 메뚜기가 다닥다닥 달라붙은 경우에 쓰이는 단어로 원충이 인간에게 달라붙어 무리를 지어 침범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삽화·신명환 작가

실제로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죽은 백혈구의 잔해 사이로 세네개의 편모를 가진 원충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양을 볼 수가 있다.

캔디다는 캔디다 알비간스라고 부르는 균으로 질 내의 산도나 클리코오겐 치가 상승할 경우 급격하게 번식하는 것이다. 임산부, 당뇨병환자, 혹은 항생물질, 경구피임약, 부신피질 홀몬제 등이 그 원인이 되는 수가 있다.

“선생님, 이런 일은 처음 이예요. 치료가 될 수 있나요?”
그녀는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함인지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말했다.

“물론 치료가 됩니다. 그 부위가 가려우세요?”
“조금은‥‥‥ 전 혹시 몹쓸 성병이라도 옮았나 해서‥‥‥”
“약을 받아 가세요. 곧 치료될 거라고 생각은 되지만‥‥‥ 바깥양반에게도 약을 복용하도록 해야겠습니다.”

한박사는 우현주라는 여인을 치료한 뒤 접수구에서 돌려진 전화를 받았다.
“한박사예요? 박연옥입니다.”
낭랑한 중년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누님! 웬 일이세요?”
박연옥여사는 한박사의 돌아가신 큰 누님인 한연희 여사의 여학교 동창인 친한 친구였다.

“나‥‥‥ 실은 뭐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 밤에라도 가면 만날 수 있겠어?”
“아니, 누님이 좋으시다면 제가 그리로 가죠. 그곳이 오히려 마음이 편해서 좋아요.”
“그래? 그럼, 와 주겠어?”
“누님 전화는 지금 말투로 봐서는 반드시 와야 한다는 명령 같은데‥‥‥”
“귀여운 따님 유리는 어떻게 하지? 그리고 하와이엔가 어딘가로 여행 떠난 마나님 이윤미씨는 집에 없잖아?”
“파출부 아주머니가 이럴 때 집을 봐 주기로 되어 있어요.”
“그래? 그럼, 일곱 시 반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호탕한 여자라고 한박사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한박사가 술을 좋아하고, 그래서 술에 취하면 차를 운전해 집에 돌아 갈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박여사는 한박사의 하는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거나 하지 않는 여자다. 남자처럼 서글서글하고 개방적인 성격인 한박사로서는 마음에 부담 없이 대할 수 있어서 좋은 사람이었다.<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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