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10>
상태바
운명은 순간인거야 <10>
  • 한지윤
  • 승인 2018.01.17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이 간호사가 붉은 색 리본으로 묶은 한 묶음의 꽃다발을 가지고 와서 한 박사의 가슴 앞에 내밀었다.
“아침에 드리고 싶었는데‥‥‥ 오전 중에 시간이 없어서 어머님께 부탁을 한 것이라서‥‥‥”
“고맙군. 이렇게 생각해 줘서‥‥‥”
그 날 저녁 7시 30분까지 누님의 친구인 박연옥 여사의 집에 가기로 약속한 한 박사는 생일 선물로 받은 꽃다발의 절반을 갈라 가지고 갔었다.

간호사들이 생일 축하로 준 꽃다발은 흐드러질 정도로 양이 많았다. 꽃잎이 탐스럽게 작은 대신에 줄기에 힘이 있는 이러한  꽃들은 도시의 꽃집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꽃이었다. 거의 야생으로 자라난 꽃송이들이었다. 따뜻한 지방에서는 1월부터 남향의 산기슭 등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계절 어느 때나 무슨 꽃이든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집에서 재배한 꽃이야?”
언젠가 한 박사는 나 간호사에게 관심 있게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아뇨, 집에서 재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럼, 자연 생인가?”
“네, 야생에 가깝습니다만,‥‥‥”
꽃잎은 예쁘장하게 작고 키는 크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풍기는, 마치 춘란을 닮고 있었다. 꽃집에서 팔고 있는 재배한 꽃들과는 그 무엇인가가 달라서 향기가 진동할 정도로 좋았다.

“좋군. 향기가 무척 좋은데‥‥‥”
한 박사는 정말 향기 좋은 내음이라고 느꼈다. 그 이후로 한 박사는 탐스런 꽃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 박사는 딸아이인 유리와 식사 때 서로 다정히 이야기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무라고 하면 딱딱하고 이럴 경우 적합하지 않은 말이 될지도 모르나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인 딸과 파출부 아줌마 둘이서만 식사를 하게 하는 것은 너무 가여운 생각이 들어서였다.
종종 집을 비우는 엄마에 대해서 유리는 그 엄마가 없어도 조금도 쓸쓸해 하거나 서운해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어제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실내화와 도시락이 든 가방을 어딘가에 두고 잊어버리고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기에 찾으러 보냈더니 교실밖 조회대에 있더라고 하면서 들고 들어온 일이 있었다.

“아빠, 이런 가방을 아무도 가지고 가지 않았어. 세 시간이나 버려진 채 있었는데도 말야.”
“누가 함부로 유리의 가방을 가져가겠어, 그렇지?”
그 가방은 소낙비가 내리는 바람에 빗물에 젖어 있었다. 유리의 이런 고운 마음이나 간호사들이 준 탐스런 꽃들도 이 지방의 맑은 공기와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구김살 없이 뻗어나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 박사는 생각했다.
 

삽화·신명환 작가

 10년 전, 한박사는 산부인과 병원을 개업하기 위해 이 지방의 부지를 물색했었다. 그는 제물포라는 지방의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출생했는데 그 탓인지 병원도 바다가 가까운 곳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 자란 제물포의 집에서는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은 항상 서해의 비릿한 바다 내음이 풍겨 오고 있었다. 그것이 본능이 된 듯 싶게 집이나 병원을 갖게 되면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바닷가라는 곳은 병원을 운영하기에는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곳이 되지는 못한다. 이러한 간단한 현실도 파악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 우습기까지 했다. 생업을 위해서 얼마간 자기 자신과 타협을 하긴 했지만 결국 지금의 이 곳을 택해 병원을 개업했던 것이다.
지금 이 병원이 선 곳은 인천 시에 속하기는 하지만 바다 쪽으로 꺾인 언덕바지의 고지 위에 있다.

처음 병원을 신축할 때 이 근방의 일대는 변두리 냄새가 물씬 나는 밭이나 다름없는 촌스러운 곳이었다. 이 곳에서 바다는 보이지는 않았다. 이러한 곳을 선택한 것은 비교적 땅값이 싸다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땅을 사고 병원을 신축하기 위해 한 박사는 아버지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제물포의 땅을 팔고 또 조금 소유하고 있던 주식도 팔아 버렸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