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11>
상태바
운명은 순간인거야 <11>
  • 한지윤
  • 승인 2018.01.24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부족한 나머지 돈은 지금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과 대지를 은행에 담보로 넣어 겨우 병원이 세워진 것이었다.
한 박사는 그 때가 마침 신혼 시절이었다. 병원의 개업과 하나밖에 없는 딸 유리의 출생은 불과 1개월 정도의 사이를 두고 겹쳤었다. 그 당시 그들의 살림집이란 다소 초라한 집이긴 했으나 한 박사는 병원 건물만은 병원답게 꾸며서 의사로서의 꿈을 살리고 싶었다.
입구에는 환자 대기실을 겸한 원형의 홀을 만들고 2층과 3층의 남쪽 창문은 멀리나마 바다가 보이도록 할 계획이었다. 한 박사는 병원이라는 곳은 밝으면 밝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후 아내인 이윤미 씨는 자유분방한 성격 탓으로 곧잘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해외에도 구실을 붙여 종종 나가곤 했다. 더욱이 그녀는 점괘에 광적으로 집착을 하는 것이었다.
“요즘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는 점이 유행 이예요.”
“그럼, 당신도 상류층에 든다는 이야기군.”
한 박사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이렇게 부인에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지적인 사람은 모두가 그래요. 유 여사, 전 여사 모두가 우리와 함께 단골이예요.”
유 여사는 전직 외무부장관 부인이고 전 여사도 상공부인지 재무부인지 장관을 지낸 사람의 부인이었다.

“그래? 그럼 당신도 지적이군.”
“이인‥‥‥ 놀리는 거예요?”
아내는 화가 났는지 눈썹을 치켜세웠다.
“뭘 그렇게 밤낮 점치러 다니는 거요.”
“방향과 날짜, 입원과 퇴원, 이사도 여행도 다 좋은 날짜와 방향이 있대요.”
아내는 또 다시 유명하다는 재벌 부인들의 이름을 수 명씩이나 들먹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얼마나 그들의 생활 속에 주어진 운명에 거역하지 않기 위해 점괘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얘기했다. 그녀들의 남편들도 찬성하고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아내는 한 박사에게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 그대로라면 이나라 정치며 경제가 모두 다 점괘 하나로 움직여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 박사는 그러한 아내의 태도를 무엇보다도 그녀의 약한 성격 탓이라고 여겼다. 인간은 누구나 사람은 자기의 약점이나 앞날의 불안에 대해 어느 것에라도 매달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하와이 여행도 그 점괘에 따라 나선 것이었다.

“10월 까지는 하와이 방면으로 여행해야 좋대요. 남동방향이 좋다니까‥‥‥하와이가 남동방향이 되나요?”
한 박사는 아내의 말에 별다른 대답도 하지 않았고 아내는 이렇게 해서 지금 하와이에 여행을 가 있는 것이었다.
한 박사는 오후 진료를 마친 뒤 오전에 전화로 약속한 박연옥 여사의 집에, 생일 선물로 받은 꽃다발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연옥 여사의 집은 한 박사의 병원에서 차로 7~8분 거리의 바닷가 낭떠러지의 벼랑 위에 있었다. 걸어서 가기도 그렇고 버스를 이용하기도 어중간하기 이를데없는 곳이었다. 국도에서 박 여사의 집까지 1.5km나 집 한 채 없는 밭길을 걸어가야 하는 외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삽화·신명환 작가.

한 박사는 박 여사의 집에 갈 때는 언제나 그의 승용차를 직접 운전해서 간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술이라도 취하는 날이면 택시를 불러서 타고 돌아온다. 그러면 다음날 박 여사가 한 박사의 차를 대신 운전해 몰고 오면 한 박사가 다시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주는, 장난 끼 같은 짓을 할 때가 있었다.

박연옥 여사는 미망인이다. 남편은 미국인 변호사였는데 5년 전에 비행기를 타고 가다 추락해서 사망했다. 그들 부부는 그 때까지 워싱턴에서 함께 살아왔으며 남편은 아내인 박 여사를 위해 이곳 바닷가의 벼랑위에 별장을 세운 것이었다. 이들 부부가 별장에 와 머무르는 기간은 1년이면 한 달 정도에 불과했다.
박연옥과 그녀의 남편은 이 별장에서 바라다 보이는 웅장한 바다를 퍽 좋아 했었다. 이 곳 바다는 바람이 알맞게 불며 낙조가 붉게 타는 저녁노을의 명소였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