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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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12>
  • 한지윤
  • 승인 2018.01.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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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한 박사는 현관의 초인종을 누르면서 낯선 자가용이 한 대 멈춰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형으로 고물에 가까운 구식 자동차였다. 박 여사가 타는 자가용은 물론 아니었다. 벨 소리에 박 여사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한 박사는 꽃다발을 내밀면서,

“늦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오늘은 한 박사에게 소개해 줄 분이 벌써 와 계셔.”
안경을 낀 삼십대 후반의 체격이 다소 왜소한 듯한 남자가 박 여사의 뒷편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렇게나 구겨 입은 바지에 투박한 쉐타 차림이었다.
“마테오 신부님‥‥‥”
박연옥 여사가 그를 나에게 소개했다.
“이번에 항도성당의 주임신부로 왔지. 이 신부님의 누님이 나하고 대학동창생이야.”
박 여사가 계속 말을 이었다.
“한국일이라고 합니다. 서로가 엉터리 같은 누님을 두어서 영광인 것 같습니다.”
“?”
“이 누님에게서 말씀 종종 듣고 있었습니다.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이 누님의 소개라면 좋은 말은 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 박사는 박 여사와 마테오 신부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럼, 이 분이 연옥 누님의 청죄사제가 되나요? 누님은 가톨릭 신자이니 이 분 앞에서 성사고해를 하시는 셈이군요?”
“글쎄‥‥‥ 그렇게 되나봐. 그렇긴 하지만 마테오 신부에게는 좀 뭣해서 서울에 나갈 때 다른 신부님께 고해하고 있지.“
“제 큰 누님과 여기 연옥 누님과는 여고동창생이십니다.”
한 박사가 신부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마테오 신부님은 어릴 때 심술꾸러기 개구쟁이였지. 신부님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신부, 안 그래?”         
“산부인과 닥터시라지요?”
마테오 신부가 한 박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탓에 연옥 누님께 항상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반대하는 중절도 하고 있지요. 오늘도 두 여자나 수술했습니다.”
“실례지만‥‥‥ 중절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이 땅에서는 얼마나 해 왔을까요?”
마테오 신부는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박 여사는 두 사람에게 위스키를 따랐다.
“글쎄요. 모자보건법이 생긴지 40년이 되고 연간 100만이라고 본다면 4000만 쯤 될 까요‥‥‥”
“상당한 숫자가 되는군요.”
신부가 말했다. “통계상 적은 해도 있을지 모르지만 몰래 음성적으로 수술하는 여자도 있겠지요. 가령 2000년에 중절한 아이가 그대로 살아 있다면 아마 벌써 생식 연령에 달했을 겁니다.
한 박사의 말을 받아 박 연옥 여사가,
“한 박사에게 내가 종종 중절수술은 그만 두라고 하고 있지만 통 말을 듣지 않는군요.”
“고마우신 배려,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박사가 소리 내어 웃으면서 박 여사를 바라보며 장난기 섞인 몸짓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중절수술 덕택으로 먹고 사는데요.”
“그렇게 많이 안 벌어들여도 되잖아‥‥‥ 병원 신축 때의 빚은 갚았겠고 처자식만 먹여 살리면 되잖아.”
“하기야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서두‥‥‥”

삽화·신명환 작가.

한 박사는 소파 위에 책상 다리를 하고 걸터앉으면서 말을 이었다.
“누님, 내가 만일 신부가 되어서 말입니다. 이 신부님 성당에서 못 쓰게 된 십자가를 한 개 얻어 와 우리 병원 지붕에 세워놓고 환자가 오면 ‘저것 보십시오. 나는 신이 두려워서 중절수술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이렇게 되면 일이 해결될 거라고 누님은 생각하십니까?”
한 박사는 취기가 오르는 듯한 어투로 말을 계속했다.
“환자들, 그런 설교를 받아들일 것 같아요? 아마 다른 병원을 얼른 찾을걸요. 다른 의사에게 가는 것보다는 내가 수술해 주는 것이 환자에게 더 큰 덕이 되거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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