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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1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아직 내 질문에는 대답해 주지 않았잖아. 인간 생명의 시작은‥‥‥”
“누님은 언젠가 내가 중절수술을 태연하게 해 치우고 나자 비난스럽게 말 한 적이 있지만 나는 지금까지 생명을 죽이고 있다고 느껴 본 적은 없어요.”
한 박사는 차츰 기분 좋게 알코올 기운이 오르고 있었다.
“중절수술을 하면서 왜 그런 실감이 들지 않을까?”
“어째서 라고 하면 다소 설명하기가 곤란하지만‥‥‥ 2,3개월까지의 태아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째서 우리들 의사에게는 그런 실감을 주시지 않는지 신의 존재가 있다면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걸요?”
“왜, 어째서 그럴까? 한 박사는 결코 둔감한 분이 아니실 텐데 말이야. 수술 중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
“어떻게 마술사처럼 민첩하게 수술을 해 내느냐 이것뿐인 걸요?”
“환자 쪽은 어떨까요?”
마테오 신부가 물었다.

“환자 쪽에서 오히려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사람도 가끔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그렇지만 어째서 우리들 의사 아니, 나 자신 부터 남보다 더 윤리관이 결여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걸요.”
“그건 몸에 배어서 그런가?“
“그렇다고만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난 처음부터 아무렇지도 않았죠. 그런 태아는 아직 모태의 자궁 밖에서는 살 수가 없으니까 생명을 죽인다는 실감은 없었지요.”
“물론 그렇지만 중절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태어나 자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야 물론 그렇지요. 그런데 그것이 내 의식 중에는 연결이 잘 안 됩니다. 살 수 있는 생명이라고 의식한다면 죽인다는 두려움도 있겠죠. 6개월쯤 된 태아의 중절을 하면‥‥‥ 이건 합법적이긴 하지만 역시 기분 나쁜 일이지요.”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중절하기도 하나요?”
“요즘은 그런 여자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간혹 찾아오지요. 낳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남자가 달아나 버렸거나 하는 불행한 일이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죠. 그래서 찾아와 매달리죠. 어제도 그런 여자가 있었습니다. 직접 당사자들은 아니지만 그녀의 할머니가‥‥‥”
“임신한 당사자들은 고등학교 학생들이었거든‥‥‥“

삽화·신명환 작가.

어제 오후의 일이었다. 휴식 시간인데 한 박사는 한 사람의 방문객을 맞은 일이 있었다. 인천에 있는 어머니의 아는 사람으로 한 박사도 언젠가 어머니 집에서 한 번 본 적이 있는 노부인이었다. 휴식 시간은 한 박사에게는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그 휴식 시간을 예고도 없이 빼앗긴다 싶어 다소 언짢은 기분이었으나 때로는 한 밤중에도 불리어 나가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현관에서 선 채로 이 손님을 맞이했다. 현관의 노부인은 한 박사의 모친과의 관계를 정중한 말씨로 늘어놓고 나서,

“좀 부탁을 드려볼까 해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하고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꺼냈다.
“네. 말씀 하시지요.”

한 박사는 말하면서 손님을 응접실에 들어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는 생각했으나 한 박사의 전문에 관한 일이라면 진료시간에 얼마든지 되지 않는가 싶어서였다. 노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딸이 시집을 가서 거기서 난 딸인 외손녀가 2학기에 들어서면서 느닷없이 학교에 가기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별로 야위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해서 그저 학교의 여선생님과 전부터 사이가 서먹서먹해서 갖는 일종의 등교 기피증이라고만 단순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니가 딸의 서있는 옆모습을 무심결에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좀 뚱뚱한 편이기는 했지만 확실히 눈에 띄게 배가 불러 보였다.

시골인 그 지방에서는 의사에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남의 눈에 띠면 곤란할 것 같아 수원까지 데리고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 그 곳 병원에서 만 6개월의 임신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지난겨울 학교의 상급생인 남학생과 깊은 관계가 이루어진 것 같다고 했다.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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