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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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21>
  • 한지윤
  • 승인 2018.04.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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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한 박사는 아내인 이윤미를 금이 간 유리그릇 같은 파손 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와서 결정적인 어떤 행동을 취할 생각은 없었다. 이윤미는 어떻든 유리의 엄마가 아닌가. 그러나 한 박사는 아내인 이윤미를 진심으로 아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서로가 결혼을 했다고는 하지만 독신과 별다른 큰 차이는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박연옥 여사가 ‘한 박사도 역시 독수공방 혼자 아닌가’ 하고 물은 것이고, 한 박사가 껄껄 웃은 것도 일종의 긍정하는 의사표시였던 것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기 시작했다. 병원은 임산부가 세 사람이나 연달아 입원을 했다. 요즘은 계획분만이라고 해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날이나, 사주를 미리 보고 와서, 좋다는 날짜와 시를 맞추어 분만을 시켜 달라는 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가령 인공적으로 아침 아홉 시경에 진통을 일으키게 해서 낮 네시나 여섯시 경에는 낳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이런 것을 병원 쪽에서도 권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할 경우 몇 사람의 간호사를 야근시키거나 의사가 밤중에 일어나는 일도 없고, 또 다른 중대한 일이라도 생겼을 경우 다른 병원 여러 전문의에게도  보이기가 쉽기 때문이다. 결국 산모의 해산도 이른바 인공적으로 근무시간 중에 끝내 버린다는 것이다.

한 박사는 이런 풍조를 좋다 나쁘다 꼬집어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예정일이 지나도 태아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예정일 이전이라도 임신중독증의 증세가 확실해지면 한시라도 빨리 출산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임신중독증의 원인은 아직 의학적으로 확실치 않다. 태반의 대사분해산물이 직접 모체에 영향을 준다고 하기도 하고 항원항체반응을 일으키는 결과라고도 하고 있다. 환자에게 설명할 때는, 아이를 낳고 나면 낫는 병이다, 라고만 하고 있다.

한 박사는 의학교과서에 밝혀져 있지도 않은  정상적인 경과와는 전혀 다른 케이스를 당한 적이 있었다. 개업해서 1년가량 된 때였다. 이 근방에서 막일을 하면서 한편 하숙집을 겸하고 있는 신명식 이라는 노인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때, 이 집의 마루에 걸터앉아서 노인과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작업복 위에서도 눈에 띄게 불룩한 배를 한 이 노인의 며느리가 얼굴이 몹시 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머니, 부기가 심한 것 같은데요?” 하고 한 박사가 그 며느리에게 말했는데 그녀는 엽차만 마루에 살며시 놓고는 대답도 없이 그냥 가 버렸다. 신 노인은 며느리가 조산원에게 진찰을 받고 있는데 혈압이 좀 높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으면 싶어도 우리 집 할망구가 고집이 세서 아이 낳는데 일일이 병원에 안 가도 돼. 난 애를 몇이나 낳았지만 병원이 뭐야. 둘째 놈을 낳을 때는 옆에 아무도 없어서 내손으로 탯줄을 끊었어, 라는 정도이니 선생님께 보낼 수도 없어서‥‥‥”
“짠 음식 먹지 말고 김치, 된장, 간장 등도 먹지 않도록 해야 해요.”

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노인의 식생활이 그리 쉽게 개선될 리가 없는 것만은 뻔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출산을 도운 조산원을 한 박사가 알고 있기에 훗날 소식을 들어보니 산모는 극히 순산을 했고 며느리는 해산하던 날 아침까지도 공장에 나가 일을 했으며 고혈압의 후유증도 없다고 하는 이상스런 일이 있었다. 신 노인의 고집 센 마누라나 그 며느리의 출산이 보인 예는 의사들의 과학적 계산을 완전히 뒤집는 경우로서 가끔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점이 한 박사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해산을 집에서 해도 된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결코 장사 속으로만 하는 말은 아니다. 출산시의 위험률은 일만 명에 한사람 정도로 대량의 출혈이 있는 경우가 있다. 호스로 물을 뿌리는 정도의 출혈인데, 몇 분 이내로 적절한 처리를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쇼크로 죽느냐, 사느냐를 가리는 갈림길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자택분만을 좋다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는 한 쪽에서는 계획분만과 같은 아주 냉철한 처신을 하는 쪽도 있고 또 한 쪽에서는 태고 적 이래로 원시적인 동물의 습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날씨가 변하기라도 하면 그 날씨로 인해 출산이 줄이어 일어난다. 예정일까지 아직 2주일이나 남았다는 사람과 예정일이 10일이나 지난 사람이 함께 입원해 온다. 병동의 책임자이며 분만 시 입회하지 않으면 안 될 간호사는 수석간호사인 민선경이다. 그녀는 벌써 육십 살에 가까운 나이에 오랜 관록이 붙은 여자다. 한 박사가 개업해서 2,3년 지난 무렵에 이 병원에 왔다. 남편은 유도 교관이었는데 사별하고 지금은 미망인이다. 그녀는 태도나 말씨가 상당히 고상하다. 분만대 위에서 얼굴이 벌겋게 되어 끙끙거리며 힘을 주고 있는 산모에게,

“너무 소리를 지르지 마셔야 합니다. 허리를 조금 드시고, 의사 선생님의 손이 있는 쪽에 힘을 주십시오. 네, 네, 그렇죠. 아주 잘 하십니다.”
한 박사는 능숙하면서도 산모에게 안도감을 주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해산은 모두 순산이었다. 놀랄 정도로 출혈이 심했던 산모는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 꼭 한 번 본 것 외에는 아직 체험한 적이 없었다. 낳은 아이들은 모두 딸이었다. 한 박사는 이 병원에서는 모두 아들만 낳고 있다고 믿고 있는 그 아주머니에게 이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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