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섰던 반계장터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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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섰던 반계장터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는 마을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6.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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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10>

농촌마을 희망스토리-장곡면 옥계1리
교통의 중심지로서 과거 5일장이 섰던 옥계1리 마을의 위상을 옥계리교차로에 세워진 이정표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홍성군 장곡면 동남쪽 끝 청양군과 경계를 이룬 지점에 옥계1리가 있다. 홍성군에서 가장 오지로 손꼽을 만한 농촌이지만 30여 년 전만 해도 옥계1리는 매우 번성한 장터였다고 한다.

■ 장곡면 대표했던 5일장 서던 마을

이석규 노인회장

“옛날에는 장곡면 소재지보다 여기가 더 컸어유. 1985년 폐장됐지만 옥계 5일장은 엄청나게 컸슈.” 옥계1리 이석규 노인회장의 말이다. 지금 마을의 모습을 보면 그의 말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50호 80여 명의 주민들이 농사를 하며 바쁘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산골에 무슨 장이 섰단 말인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마을의 고샅을 천천히 걸으면서 살펴보면 옛날 장이 섰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안길을 마주하고 있는 집들 가운데 옛날 가게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슬레이트 집이 눈에 띄었다. 미닫이문 형태로 여러 장을 겹쳐서 닫을 수도 있고 모두 활짝 열어젖히면 가게 안에 진열된 상품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손님이 쉽게 드나들며 흥정도 했다. 물론 지금 그 미닫이문들은 바람벽의 구실을 하며 굳게 닫혀 있다. 이석규 노인회장은 “여기는 싸전, 저기는 어물전…” 하면서 옛날 시장의 모습을 설명해준다. “옛날 ‘옥계리’ 하면 잘 몰라도 ‘반계장터’라고 불리며 유명했슈. 장곡면 소재지에는 장이 없었고, 여기가 장곡면을 대표하는 5일장이었슈.”

이 회장은 바로 이웃한 청양군 화성면이 고향으로 18세 때 아버지를 따라 옥계리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거의 60년 전 10대 소년으로 낯선 고장에 왔던 이 회장은 반계장터를 주름잡던 건달들의 텃새가 심해 많이 싸우며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때 이 동네 건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다른 동네 사람 건드리고 그랬슈. 그래도 이 동네가 대단했던 것은 ‘대중관’이라는 기생집이 있었슈.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 아무나 받지도 않고, 청양·광천·홍성에서 좀 노는 사람들이 와서 술을 먹었던 곳이었지.”

이 회장은 당시 옥계리는 1~2구 없이 하나의 마을이었다며 전체 130~140호 규모였다고 했다. 이농 바람이 불기 전 남녀노소 골고루 가족을 이루며 살 때였으니 주민 수도 500명은 넘었을 것이 분명하다. “옛날 블로크 공장도 있었고, 천태리에 광산도 있어서 탄 캐는 사람들도 많았슈. 광부들이 여기로 다 술 먹으로 왔슈.” 광부들은 매월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었으므로 농사를 짓는 주민들보다 씀씀이가 좋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또 하나 옥계리가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로 편리한 교통을 꼽았다. 옥계리가 청양과 광천, 홍성, 예산군 광시 행 버스가 수시로 다니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인근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외지로 드나드는 정거장이었다. 그래서 자연히 사람과 함께 물산이 거래되는 5일장이 섰다.

이 회장은 30대 청년시절 옥계리에서 다방을 처음 운영했는데 꽤 장사가 잘 됐다고 한다. “내가 여기서 사진관을 10년 하다가 적성에 안 맞아서 다방을 처음 개척했어요. 그 때 광천읍과 청양읍에 다방이 3~4개밖에 없었죠. 청양군 화성과 비봉 사람들이 여기 와서 버스를 타고 청양장도 가고 대천장도 가고 예산장도 다녔으니 닷새에 3일만 해도 장사되겠더라고….”

인근 지역 5일장 서는 날이 서로 다르다보니 거의 매일 옥계리는 장보러 가는 사람들로 붐볐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다방은 대합실 구실을 톡톡히 했다. 물론 처음에는 막걸리 한 사발 값의 찻값이 아까워 시골사람들이 다방에 들어오기를 꺼렸지만 막상 이용해보니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젊은 아가씨와 수다를 떨며 시간을 죽이는 데는 최고여서 꽤 영업이 잘 됐다고 한다. 그러나 2~3년 후에는 우후죽순으로 다방이 생기면서 시들해져 그만뒀다고 이 회장은 회고한다.

지금은 쇠락한 농촌마을이지만 여전히 교통은 좋은 편이다. 청양은 1시간 단위로, 광천과 홍성은 1시간에 2~3대씩 장거리 시외버스와 군내버스가 다닌다. 장터는 없어졌지만 한식집과 중국음식점이 각기 하나씩 두 개의 식당이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 마을에 중소기업 ‘현대철망’의 근로자들도 있고, 농민들도 들일하다가 점심식사를 직접 해 먹기보다는 음식점을 찾아오거나 배달을 시켜 해결하기 때문에 겨우 수지를 맞출 정도로 운영이 된다고 한다.

■ 무한천 둑 높여 상습침수지역 해결
옛날 어린 자녀들을 위한 교육문제는 청양군 비봉초등학교로 배정해 해결하도록 했다. 바로 무한천 건너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통학이 가능한 학군으로 묶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학교도 폐교된 상태다.

마을 앞을 흐르는 무한천은 예로부터 너무 맑고 깨끗해 산수가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옥 같이 흐르는 아름다운 시내’라는 뜻의 ‘옥계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도 전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흘러가는 청정마을이지만 여름철 장마 때가 문제였다. 범람하기 일쑤여서 마을에 큰 고민거리였는데 최근에야 해결됐다. 군에서 지난 3년 동안 100여 억 원을 들여 둑을 높이는 공사를 해 지난해 말 완공한 것이다. “그 동안 옥계1리 일대가 상습침수지역으로 비가 오면 나룻배로 사람들이 피난가곤 했죠. 지금 다리도 놓고 마을 공원도 새로 조성해 놓았습니다.”

이 회장은 이제 폭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새로 산뜻하게 조성한 마을공원에 배수펌프도 있어서 물이 넘칠 정도로 비가 오더라도 심각한 수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축산농가가 없으니 악취도 없어 외지사람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물이 맑고 깨끗한 무한천에 낚시꾼들 많이 와요.” 산 좋고 물 좋은 옥계리는 귀농·귀촌인들이 선호하는 마을이기도 하다.

■ 텃밭절임농가, 직접 가꾼 작물 직거래

조만철 총무

노인회 조만철 총무는 ‘텃밭절임농가’를 운영하며 김장철 직접 재배한 배추를 절여 직거래로 도시인들에게 판매한다. 그는 배추뿐만 아니라 콩, 팥, 깨, 구기자 등의 작물과 잡곡을 재배하고 판매한다. 특별한 유통수단도 없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했던 사업이 좋다는 입소문으로 전파돼 가까운 홍성군내 주민은 물론 멀리 서울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온다. “알음알음으로 고객이 소개해줘 주문이 들어오죠. 제 고객은 서울에 많아요. 외국산으로 속을 일이 없으니까 소비자들이 믿고 구입하죠. 농산물을 주문 받으면 택배로 부칩니다.”


미/니/인/터/뷰-현대철망, 옥계1리와 공존하며 이윤 지역환원 앞장

정임순 이사

옥계1리 마을과 마주하며 청양군과 경계선이 지나가는 곳에 현대철망(대표이사 김종훈)이 있다. 말 그대로 토목공사에 사용되는 철망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으로 하천에 제방을 쌓을 때 필요한 돌망태가 이 회사의 대표적인 상품이다.

홍성군을 비롯해 인근 청양군과 예산군, 서산시, 보령시 등의 지자체가 시행하는 관급공사에 주로 납품한다. 현대철망은 조달청의 입찰을 통해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꾸준히 수요를 확보하며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이 회사가 옥계1리에 터를 잡은 것은 2003년부터다. 원래 퇴비를 만들던 공장을 인수받아 공사자재 제조업으로 사업용도를 바꿨는데 오히려 옛날만큼 악취나 공해가 없어 민원이 발생한 적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냄새 때문에 항의가 잦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인수한 후에는 친환경 제조업으로 바뀐 셈이죠.”

정임순 이사의 말이다. 남편 김종훈 대표이사가 상품의 제조와 경영을 책임지고 정 이사는 마당발처럼 쫓아다니며 거래처를 확보해 현대철망을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옥계1리 마을과 상생하기 위해 기업의 이윤을 적극 나누는 일에도 앞장섰다. 주민 개개인의 대소사는 물론 마을의 행사 때마다 후원할 뿐만 아니라 홍성군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기부한다.

“옥계1리는 옛날에 키우던 개가 집을 나갔을 때 어떤 할머니가 찾아주셨던 따뜻한 마을이에요. 마을에 행사가 있으면 꼭 저도 참석하죠. 제가 지나가면 어르신들이 알아보고 꼭 인사를 하셔요.”

전체 직원 6~7명 규모의 작은 중소기업이 옥계1리 외진 산골 마을에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과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공존하는 데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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