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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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33>
  • 한지윤
  • 승인 2018.07.0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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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FSH라 불리우는 난포자극호르몬, LH라고 하는 황체화호르몬, LTH라고 하는 황체형성 호르몬이다. FSH가 난소의 난포를 발육시켜 임신 즉 수태한 난자의 착상에 대비한다. LH는 발육된 난포를 배란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난소에 황체라는 조직을 만들고 이것을 유지시키는 것이 LTH이다. 배란 후 약 14일 전후 해서 황체가 위축하며, 난포 호르몬과 황체호르몬의 두 작용이 쇠퇴하므로써 월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체의 시상하부가, 약이나 염증성질환등의 원인 외에도 환경이나 정신의 작용을 받으면 그 호르몬의 분비기능을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한 박사는 이 여대생에게 의학적인 기능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만일 그녀의 혈액이나 소변의 검사결과 고나도트로핀의 분비량이 적고 그 중에서도 특히 배란기능과 관계가 깊은 LH가 적다면 그건 약물치료와 동시에 정신과 의사에게도 치료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위고자 해서 생긴 결과가 멘스가 6개월씩이나 없고 산부인과에서 그 원인이 규명되었다고 해도 무엇 때문에 이 여대생은 그렇게까지 야위기에 집착하는 것인지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한 박사는 새삼스럽게 모녀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라는 여자는 살이 다소 찐 편이다. 어머니와 딸을 비교하면 어머니가 나이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한 박사에게는 그 어머니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사모님이 돌아오셨습니다.”
하고 한 박사가 외래 진찰실에서 파출부에게서 온 전화를 받은 것은 오후 다섯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비행기는 오후 한 시경에 도착했을 터인데 거리로 보아 빨리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음, 알았어요.”
하고는 환자의 진찰을 한 박사는 계속했다. 자동차 소리도 못 들었거니와 환자는 붐비고 있었고 딸 유리는 이미 학교에서 돌아와 있을 것이므로 일부러 집까지 아내를 마중하러 나가지 않아도 되겠지 하는 한 박사의 나름대로의 심산에서였다. 한 박사가 환자의 진찰을 전부 끝내고 집에 돌아 온 시간은 여섯시를 조금 지나서였다. 이윤미는 2층의 침실에 있었고 한 박사는 슬러퍼를 끌면서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왔구먼.”
한 박사는 방바닥에 널려져 있는 여행용 큰 가방을 가로질러 건너서 창가의 쇼파에 가 앉았다.
이윤미는 외출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채로 열려 있는 옷장 앞에서 이 쪽을 돌아보고는 씽끗 웃기만 하고 ‘지금 왔어요’라는 식의 인사 한 마디도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공항에서 승용차로 왔나?”
“그래요”
“하와이에서는 즐거웠어?”
“로스엔젤레스에서 곧장 왔어요. LA에서 여기까지는 논스톱으로……”
“난, 또 LA 나 하와이에서 쉬고 있는 줄 알았지.”
“왜, LA까지 간 것 같아요?”
“방향이 그쪽이 좋았던 게지.”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하와이에서 알게 된 사람이 LA에 꼭 오라고 해서 갔다 온 거예요.”
“그래. 잘했군.”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글쎄…… 궁금해 해도 당신은 어차피 갈 것 아냐?”
“당신은 내게 너무 무관심해요.”
“공항에 마중 나가지 않은 것 말인가?”
한 박사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내 마음대로 휴진할 수 없잖아. 환자들은 각자 자기들 형편이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내가 없는 편이 더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

한 박사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아내의 말이 어느 정도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본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떻든 여행은 즐거웠잖아?”
한 박사는 정면으로 아내와 충돌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요. 모두 날 필요로 하는 사람들 뿐인 걸요.”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 유리도 기다리고 있었어. 엄마가 돌아온다고.”
“거짓말 이예요. 유리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도 않고 있어요.”
“이상한데…… 오늘 당신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아마 친구들하고 놀고 있는 게지.”
유리는 다른 집 아이들과는 달리 피아노나, 무용이나 과외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가 돌아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굣길에 친구들과 어울리면 저녁밥도 잊고 어두울 때까지 놀다가 늦는 일은 가끔 있었다.

“나 말예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존재라면 안 돌아 올 걸 그랬어요.”
한 박사는 연극의 대사 같은 느낌을 머리에 떠 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여자의 방식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대답해야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없으니 역시 불편하더군. 창고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을 불렀지. 또 샤워기가 부러져서 고칠 수가 없다기에 새로 갈았지.”
말을 하면 할수록 한 박사는 아내를 화나게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보는 듯했다.
이윤미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아내 그 자체가 아니라 가정부나 아니면 관리인의 역할을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냐고 윤미가 말할 것 같았던 것이다. 
“유리도 곧 시험이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안 오고 있어요.”
“그런가? 아무 소식도 못 들었는데. 빨라도 12월 중순경이 아닌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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