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산수 좋아 산수동 지금도 귀촌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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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산수 좋아 산수동 지금도 귀촌 1번지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7.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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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15>

농촌마을 희망스토리-홍북읍 내덕리 서력마을
산수동은 말 그대로 산수가 좋아 어디서나 야트막한 산을 배경으로 자연과 잘 어우러진 풍경화가 나온다.

서부면 이호리 산수동은 이호리 중촌에 형성된 면 소재지 배후마을로 면의 중심지 기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대중교통도 좋아 홍성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많고,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를 연결하는 40번 국도변에 입지해 외부로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 최근 도시에서 8가구 들어와
우심산 남쪽 산자락에 위치한 산수동은 서쪽 상황리 바닷가 쪽 도로를 따라 1반, 남쪽 남당리 바닷가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2반, 중촌마을 입구에서 갈라지는 길을 따라 ㄱ자형으로 나눠져 있다. 전체 가구수는 44호, 주민은 100명 정도 된다. 2012년 나온 면지에는 산수동에 36세대로 나타나 있으나 불과 6년 사이 8세대 정도가 늘어났다. 도시에서 귀촌인들이 들어왔기 때문인데 마을 원주민들은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마을은 자랑할 만 한 게 없지만 제가 처음 이장 볼 때 36가구에서 이렇게 44가구로 늘어났습니다. 지금도 오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산수동 박헌규 이장은 귀촌인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서해안고속도로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서해 바다가 바로 고개 너머에 있고, 주변의 자연환경이 좋아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산수동’이라는 부락의 지명만 봐도 예사롭지가 않다.

이 마을은 옛날부터 우심산의 수려한 곳에 위치하고 있고 물이 좋아 ‘산수’(山水)라고 했다는 유래가 지금까지 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바로 이웃하고 있는 거차리에 대형 돈사가 들어온다며 주민들은 무척 걱정했다. 돼지 분뇨냄새가 바람을 타고 산수동까지 날아오면 귀촌인들이 기피하는 마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수동에서 상황리로 넘어가는 고개 주변 산비탈에는 황토흙을 드러낸 채 태양광발전소를 짓기 위해 공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정부가 친환경 대체에너지로 권장하고 있는 태양광발전소지만 산림 훼손이 불가피한 데다 곧 닥칠 장마에 산사태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태양광발전소는 외지인이 지어서 분양을 했습니다. 부락에서 반대해도 군에서 허가했기 때문에 주민들이 농경지에 피해가 없게 해달라고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박헌규 이장은 발전소가 마을 한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업자로부터 마을발전기금을 받고 타협했다고 말했다.

상황리로 넘어가는 고개길 부근에 태양광발전소가 건립중이다.

■ 개발과 변화 거부 있는 그대로 좋아
산수동 마을회관은 서부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어 학생들이 1년에 두어 차례 방문해 노인들을 위해 재롱잔치를 벌이는 것은 큰 위안거리다. 서부초교는 전교 4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는 농촌학교로 그나마 산수동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마을에 서부중학교까지 있어서 어린 자녀를 가진 젊은 부모들이 교육을 시키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정작 산수동은 학생이 많이 없다.

“우리 마을에는 유치원생 1명, 초등생 1명, 고교생 1명이 있습니다. 중학생만 없습니다.” 마을에 귀촌하는 외지인은 대부분 은퇴자들로 기존에 고령화된 원주민들까지 더하면 65세 이상 어르신이 90%에 달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이야기다. 마을 조직으로는 청년회가 아예 없다. 노인층이 많다보니 주민들의 성향은 매우 보수적이다. 마을 만들기 등 혁신적인 프로그램에 관심이 없고 변화를 싫어 한다. 박 이장도 마을이 개발되는 것을 반대했다.

“동네가 변화하는 것이 싫습니다. 옛날 모습 그대로 간직하면서 공기 좋고 깨끗한 마을을 지켜 나갔으면 합니다. 욕심 부릴 것도 없고 개발하는 것도 싫습니다. 주민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기 농사를 지어가면서 살 수 있게 했으면 합니다.” 산수동은 이미 30여 년 전에 큰 변화를 겪었다. 그 때는 바다가 매우 가까워 해산물을 채취해 생계 수단으로 삼았다고 한다.

“예전에 천수만을 막기 전 바다에 많이 다녔습니다.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삼았으나 간척사업 후 지금은 바다가 멀어져 어업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박 이장은 옛날 일을 회상하며 마을을 완전히 육지 속에 가둬버린 개발사업을 아쉬워했다.

마을회관 앞에 선 박헌규 이장, 김원훈 노인회 사무장, 박민수 새마을지도자(왼쪽부터).

■ 김복한 선생 사당 추앙사
산수동에는 지산 김복한 선생의 사당 추앙사가 있다. 김복한 선생이 1895년 을미사변 때 청양의 안창식 등과 함께 거병하며 항일운동을 했으나 관찰사 이승우의 배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돼 유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고종의 특사로 풀려나 낙향한 그는 학도들을 모아 강론활동을 하다가 1919년 3·1 운동 때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다. 이 일이 발각돼 일경에 체포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했다. 정부는 그의 뜻을 기려 1963년 독립장을 추서했다.

“추앙사는 지방문화재로 매년 음력 4월 17일 제례를 합니다.” 그 밖에 마을에서 계승하고 있는 전통문화는 없다. 어르신들에게 여행을 보내드리고, 효잔치를 열어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출향인 모임으로 동네를 안온하게 품어주는 우심산의 이름을 딴 ‘우심회’가 조직돼 있다. 우심산은 등산로가 잘 개발돼 있다. 이호리 중촌에서 시작해 우심산(169.7m)을 올라 부엉재산(150.2m), 상황리 은봉산(128.9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코스로 그렇게 높거나 험하지 않아 꽤 많은 등산 애호가들이 찾는다. 서해안을 다 내려다 볼 수 있어 전망도 좋다.

■ 노인회 김원훈 사무장
산수동 노인회 김원훈 사무장은 인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퇴직하고 2007년 귀촌했다. 전혀 연고가 없었던 산수동에 들어온 이유는 친구 때문이다.

“먼저 내려온 친구 때문에 이 동네에 따라 들어오게 됐죠. 이호리 산수동을 귀촌지로 택한 이유는 산수가 좋고 주민들이 편안하게 대해줬기 때문입니다.” 김 사무장은 밭농사를 400평 정도 짓는다고 했다.

“참깨, 들깨, 콩, 배추, 무 등의 농사를 짓습니다. 수도작은 안 합니다. 도시에 있는 자녀들에게 김장거리 정도는 해 줍니다. 농법은 관심을 가지니까 배우게 되더군요.” 11년 정도 지나면서 완전히 농사꾼이 됐다는 그는 이제 도시로 돌아갈 맘이 없다고 했다. 그가 섬기는 노인회는 회원이 50명이다. 할아버지 23명, 할머니 27명으로 남녀 성비도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 박민수 새마을지도자
박민수 새마을지도자는 50마지기의 수도작을 한다. 한다. 산수동에서는 가장 많이 짓는 쌀전업농이지만 다른 동네에 비하면 큰 규모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는 콤바인조차도 없다. 그런 대형 농기계를 갖춰놓고 운영하기에는 수지가 안 맞아 전문으로 하는 사람에게 맡긴다고 했다. 박 지도자는 인근 부락에 들어올 대형 양돈장에 대해 걱정했다. 또 논 한가운데 들어서는 농기계수리센터가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절대농지를 전용하도록 군이 허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민수 지도자는 산수동 입구에 있는 RPC가 벼를 건조할 때 엄청난 양의 미세먼지가 발생한다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이 마을회관에서 더위를 식히며 윷놀이를 하고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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