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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39>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서재에 들어온 수간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인사를 했다.
“뭐, 별 것도 아닐 텐데……”
한 박사는 눈으로만 웃었다.
“거기 앉으시오. 조금 전 출산한 산모는 안정됐어요?”
“네, 출혈도 없고, 자고 있는지 눈을 감고 누워 있습니다.”
“나이분 간호사에게 들었어요?”
“네. 조금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당황하고 있을 거야.”
“네.”
“두 가지 측면이 생각되는데 하나는 잠자코 돌아가는 일이지.”
수간호사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임신이라고는 생각도 하기 전에 그녀는 자기 집 주소를 정확히 말했으니 이 집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단지 며칠 동안은 신생아실의 문단속을 철저히 해 줘야겠어. 야근 중에 소홀히 하다가 깜박 잠드는 수도 있으니까 자물쇠를 잘 잠그도록 특별히 조심하라고 일러두시오.”
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이건 지나친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 여자는 아이를 몰래 데리고 나갈지도 모르지. 아니 데리고 나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다른 사람의 아이에 손을 댄다면 큰일이니까.”
라고 말을 보탰다. 사실 한 박사는 좀 더 확실하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나가든지, 혹은 자기 아이를 죽인다면 내가 곤란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에게 여고생 딸이 있는데 아이를 낳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고 괴로워하고 있으니 이 점 조심해야겠어.”
“조금 전에 나이분 간호사에게서 들은 이야긴데요. 그 환자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 식료품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세상은 대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법이다.
다음날 아침 연락 때 산모는 극히 순조롭고 아무 일도 없다는 보고를 듣고 한 박사는 그 이상의 것은 마음을 놓기로 했다.
‘마음을 놓는다’라는 말은 한 박사가 좋아 하는 말이었다.
개개의 경우 인간은 자기의 분수를 알고 알맞게 처신만 한다면 크게 까다로운 일없이 지나가는 법이다.
그 날 밤 아내가 여행에서 돌아왔다고 해서 찾아온 박연옥 여사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느닷없이,
“병원에서 낳은 아이 중에서 누군가 양자로 줄 사람은 없어?”
“아니, 누님도 할 수 없이 양자라도 들일 셈인가요?”
“아아니. 돌아가신 바깥양반의 친구 분인데 부부가 11월인가 12월인가 한국에 오기로 돼 있어. 그 때 아이 한 명을 양자로 해서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하더군. 누군가 소개해 줄 수 없는가 하고 내게 편지가 와 있지만……”
“대단히 친절한 일이군요.”

“어머, 의심스런 얼굴을 하고 있네.”
“그렇잖아요. 난 사십댑니다. 그리고 남자고, 이런 갸륵한 이야기에 감격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질 나이도 아니고,”
“백, 흑, 황색을 골고루 갖추자는 건가?”
한 박사는 장난기 섞인 말을 하면서,
“내가 만일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누님이 지금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신의 섭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침 갓난아이가 한 명 있기는 한데……”
“몇 개월 된 아이지?”
“어제 출생한 사내아인데.”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대요.”
“주선해 보도록 하지요. 남편이 없는 여자가 낳은 아이니까.”
“미망인? 그런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면 쇼킹한 뉴스가 아니야?”

“누님도 한 번 쇼킹해 보시죠. 우리병원에 입원해서 낳아도, 제가 아이 아빠가 누구냐고는 맹세하고 묻지 않을 테니까.”
“어머나,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싱겁게.”
박 여사는 한 박사의 농담을 이렇게 받고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자로 주겠대?”
“아마 그럴 겁니다. 키울 형편이 못된다고 하고 있으니.”
“정말 신이 인도하시는 섭리 같아.”
“우연이란 거겠죠.”
한 박사는 옆에 있는 위스키 병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들 부부는 이 일도 있지만 그들 부부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양자로 들여와 키우고 있는 미국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있대. 그걸 보러 온다더군.”
박 여사는 잠깐 한 박사를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일곱 부부가 80명쯤 아이를 키우고 있대요. 자기의 아이들과 양자를 섞어서 그 중에는 20명 정도 키우는 집도 있고, 6명만 키우는 집도 있어. 그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의 교회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생활을 돌봐주고 있대. 그들 부부도 몇 해에 한 번 정도지만 거기에 가서 돌봐준다는 이야기야.”
“그 사람들은 아이들을 이제 다 얻은 것 아닐까요? 아직도 더 얻을 여지가 있을까?”
“더 얻을 거라더군. 그 곳 커뮤니티의 지도자는 토마스 씨라고 군인으로서 전에 아시아의 여기저기를 간 적이 있대. 타이, 세이론, 월남, 필리핀.”
“미국 군대가 세이론에도 주둔했나?”
“글쎄, 난 잘은 몰라. 개인적인 여행인지도 모르지.”
“그건 그렇고, 그래서?”
“토마스 씨는 자기 아이만 8명이래. 거기에 양자가 10명, 그래서 총18명!“
“그 아이들을 전부 먹이고 입히고 학교도 보내고?”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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