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대상으로서의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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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대상으로서의 스마트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8.09.0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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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톨스토이는 “사랑으로 산다”고 답했다. 사랑은 주체인 나와 관련을 맺는 대상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그 대상은 사람일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유아기의 경우 들려오는 노래 소리 혹은 곰 인형, 자신의 살 냄새가 배인 이부자리나 담요에 애착을 느끼는 현상이 그것이다. 위니컷(대상관계이론가, 소아과 의사)에 따르면, 중간대상이란 유아가 보통 생후 4-12개월에 자기와 구별된 나 아닌 타인을 발견하면서 불안을 경험하고, 엄마의 존재를 대신하거나 엄마로서 자신을 달래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중간대상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자가 위로 능력이 있어 성인이 되서도 곁에 두면 마음의 평안을 재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댁에서 보냈는데, 외할머니는 여순반란사건으로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을 잃고 30세 후반에 홀로 돼 엄마와 이모를 키웠다. 엄마가 7살 되던 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결혼한 후에도 한 동네에 살면서 우리 오남매의 성장을 지켜봐 줬다. 특히 허약했던 나를 잠재울 때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를 수없이 불러 주셨다. 당시 외할머니의 노랫소리에는 서러운 애환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담겨있었지만, 내게는 사랑이 가득 담긴 좋은 중간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힘든 일이 있거나 허약함이 느껴질 때면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그 시절로 퇴행해 다독거림을 받고 싶어 하는 나를 경험한다.

중학생 딸(A양)을 홀로 키우고 있는 E씨는 칼칼한 목소리로 “우리 딸은 게임을 너무 많이 해요. 밤낮이 뒤바뀌어서 학교도 자주 결석하고, 학교 수업시간에는 거의 엎드려 있다고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식사도 컴퓨터 옆에서 먹여줘야 하고, 살도 많이 쪄서 너무 뚱뚱해요, 요즘은 머리에 탈모증상이 있어서 정말 속상한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에요.”라고 했다. 그녀는 미혼모로 A양을 출산 하고 100일 경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세 들어 살던 집 주인 할머니에게 아이 양육을 맡겼다. 주인 할머니와 특별한 놀이도 없이 지내던 A양을 안쓰럽게 여긴 그녀는 2살 때 쯤에 스마트폰을 사줬다.

그때부터 A양에게 스마트폰은 가장 친밀한 중간대상이 됐고, 스마트폰을 통해 만난 사이버 세상은 무궁무진한 흥미와 다채로움을 제공해주는 최고의 놀이 공간이 됐다. E씨는 A양이 혼자서도 잘 노는 모습에 안심하고 일터로 나갔고 귀가한 후에는 먹이고 재우는 일 외에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수년이 지난 어느 때부터인가 A양에게 나타난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위니컷에 따르면 “중간적 대상, 중간적 공간은 또한 창의성이 발휘되는 영역“이라고 한다. 어린이가 중간대상을 통해서 즐거운 놀이를 경험하면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이 발달하고 이는 곧 창의성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A양이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스마트폰은 상호작용이나 창의성, 의사소통이 필요치 않은 도구였다. 본인이 심심하고,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낄 때마다 익숙한 스마트폰으로부터의 이행을 엄마가 제공한 것이다.

국내외의 자료에 따르면, 2세 이전은 절대적으로, 이후에라도 학령기 이전은 하루 1시간 이하, 초등학교 이상 미성년자에 대한 오락 목적의 노출은 2시간 이하로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영유아 스마트폰 코호트 조사에 따르면, 2세 이하 영유아의 과반이상이 스마트디지털 미디어에 노출되고 있다고 한다. 영유아기 때에는 자연을 느끼고 상호소통이 가능한 부모와의 눈빛교환과 스킨십을 통해 좋은 중간대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인성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게 하는 토양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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