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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참상,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겠다”출향인 인터뷰<13> 구재회 박사
  • 취재=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9.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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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읍 옥암리 출신인 미국 죤스홉킨스대학 구재회 박사(사진 원 안)가 펴낸 한국전쟁(1951~1953)관련 다큐멘터리 사진첩 ‘훼이딩어웨이(FADING AWAY)’표지.

한국전쟁 실상 담은 다큐멘터리 ‘Fading Away’출간
미국 죤스홉킨스대학 정치연구소장 구재회 박사


미국에서 한국전쟁 관련된 다큐멘터리·사진·자료 등 발굴해
한국전쟁의 참상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기념비적 쾌거
외할아버지 이강세의 삶을 전해 듣고 정체성 혼란 큰 충격
백악관, 워싱턴 정가 “현재의 남북 상황 결코 순탄치 않아”



전쟁에서 영웅은 무엇일까? 우리들처럼 평범한 사람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런 사람들에게 발생한 억울한 일도 묵묵히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가 지금처럼 흐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었던 댓가치고는 너무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다 이 땅의 현실이고 운명인 것을…. 한국인 노무자들, 일명 지게부대원들은 한국인 노무자 부대원들이 지게를 메고 거친 산을 올라 미군들에게 꼭 필요한 탄약과 식량을 보급해주는 것에 환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지게가 A자 모양처럼 생겼다고 ‘A-Frame Army’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은 회고록을 통해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10만여 명이었다고 하지만 실제 비공식 기록은 3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 1951년~1953년간 희생된 인원만 총 8794명이었는데, 이 기록은 공식기록이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군번도 없이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전쟁 당시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습니다.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단순히 아무런 대가도 없이 강제 징용돼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지만, 아직도 그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전쟁은 모든 인간성을 말살하는 무서운 인재(人災)이기도 합니다. 그런 인재 속에서도 우리는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며, 앞으로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 해야 합니다.”

■ 한국전쟁의 참상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에서 출생한 구재회(미국명 JAE ku) 박사(정치학)가 미국에서 6·25 한국전쟁의 참상과 현재 남과 북의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훼이딩 어웨이(fading away)’를 제작 발표하면서 화제다. 지난 봄 미국 죤스 홉킨스대학 정치연구소(소장 구재회)에서 발표된 영상과 사진첩에는 30여분의 다큐멘터리(감독 HK, LEE) 영상과 300여 장의 사진이 실려 있다.

구 박사는 “1950년~1953년까지 3년 동안의 6·25 한국전쟁 중 미군은 3만 6940명이 전사했고 7140명이 포로가 됐으며, 8176명이 행방불명 됐다. 거기에 더해 한민족은 100여만 명이 목숨을 잃는, 6·25 한국전쟁은 민족상잔의 대 참극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집념으로 구 박사가 펴낸 ‘훼이딩 어웨이’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발표된 사진과 영상 이외에 최근에 찾아낸 참전 기자와 참전 용사들의 자료를 수록해 잊어져가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는 기념비적 쾌거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훼이딩 어웨이의 총감독을 맡은 구재회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열 한 살이었던 어머니(이종실·81·미국 거주)로부터 외할아버지(이강세, 해방 후 홍성군농민조합장)의 삶을 전해 듣고 정체성의 혼란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백악관 및 워싱턴 정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의 남북 상황이 결코 순탄하게 전개되리라고 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밝히고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데 전쟁이 나면 어느 쪽이 더 치명타가 되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조금이나마 조국을 위해 돕는 일이 무엇일까를 찾다가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죤스홉킨스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구재회 박사는 홍성읍 옥암리에 거주하고 있는 이종민 회장(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홍성군유족회장)의 셋째누나(이종심·81·미국거주)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이다. 구 박사는 미국의 정계뿐만 아니라 한국의 유명정치인들과도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 정부의 장관이나 국회의원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으로 연수나 연구 등을 위해 오는 정치인들과 깊은 교류를 하고 있으며, 거처 등을 주선해 주거나 알선하는 등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민 회장은 6·25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가세가 기울자 1970년대 초 공장노동자로 일자리를 찾아 미국행 이민보따리를 쌌다. 이 회장은 그곳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안정이 되자 한국에서 어렵게 사는 누나와 조카들을 데려와 후견인으로 30년 동안 뒷바라지를 했다. 이 회장의 첫째누나 이종섭(87·미국거주)씨의 아들 김종(MIT공대 생명공학박사) 박사는 나스닥 상장사 사주로 있고, 이종민 회장의 아들도 미국 코로라도 주에서 치과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종민 회장은 미국에 살면서 “더 늙기 전에 아버지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지내다가 2005년도에 30년 만에 귀국을 결심, 현재 홍성읍 옥암리에서 살면서 전국 어디든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학살 등 유골발굴현장을 돌면서 당시의 진실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 회장은 “조카 재회가 더욱 정진해 이른 시일 내 북한주재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것을 꿈속에서라도 꼭 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구재회 박사가 소장한 가족사진. 뒷줄 왼쪽이 외할아버지 이강세 부부. 안긴 어린이가 외삼촌 이종민 씨. 앞줄 왼쪽이 구 박사의 어머니 이종실 씨의 모습.

■ 외할아버지 이강세의 삶, 정체성 혼란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구재회 박사의 외할아버지인 이강세(해방 후 홍성군농민조합장)의 삶이다. 이강세는 1909년 홍동면 금당리 황새울에서 아버지 이흥로와 어머니 홍 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2년 홍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이강세는 어머니를 따라 홍성공립보통학교로 옮겨 1927년에 17회로 졸업했다. 이후 이강세는 일본으로 건너가 3~4년 동안 일본의 농업을 공부하고 귀국해 1988년 미국에서 작고한 이묘희와 결혼해 딸 다섯(종섭·종심·종실·말미·소심)과 아들 종민(일명 새별) 등 5남 1녀를 뒀다. 이강세는 홍성에서 종묘상을 하는 등 일본에서 배운 농사법을 이웃들에게 지도하고 신품종 종자개량 등으로 보급하는 등 모범적인 농촌의 청년지도자로 활동했다.

이처럼 순수한 농민으로서 이강세는 항일민족정신이 강해 일제 말기 홍성의 사회활동에 뛰어들면서 가야동지회 등에 참여했다. 가야동지회는 홍성의 지식인 20여명이 한 달에 두 번씩 관솔 채취를 위장해 덕산의 가야산에 모여 정치적인 정보교환과 정열적인 토론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이후 이강세는 홍성군자치위원회와 건국준비위원회 등에 참여했고 홍성군농민조합장으로서 1945년 서울에서 개최된 전국농민조합총연맹결성대회에 홍성군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농민조합을 이끌던 이강세는 만해 한용운의 아들인 한보국과 장인갑 등이 주도하는 인민위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1946년 10월 항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48년 공포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1949년 6월 국민보도연맹이 결성된다. 이때 이강세는 보도연맹에 가입해 선전부장을 맡는다. 구재회 박사의 외할아버지인 이강세는 홍성의 자주적 농민의 표상으로 어떠한 지식인보다도 실천력이 뛰어난 활동가로 평가를 받았으나, 1950년 6·25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용봉산 골짜기와 오서산 등지에서 자행된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42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지금도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흔적조차도 찾지 못한 채 혼백만이 여전히 구만리중천을 떠돌고 있다. 최근에야 오서산 폐금광 굴에서 유골이 발굴되는 등 유해 찾기에 나섰고 용봉산골짜기 학살현장 추정지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홍성군유족회장을 맡고 있는 외삼촌인 이종민 회장과 함께 미국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당시의 사진 등과 자료를 발굴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구재회 박사의 열정과 집념이 정말로 귀중한 한국전쟁과 가족사의 진실한 역사적 기록의 편린으로 남을 것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취재=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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