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를 잡다, 농민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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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잡다, 농민생각
  • 이동호 <홍동면>
  • 승인 2018.10.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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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쥐가 나타났다. 슬그머니 부엌 한쪽 벽으로 빼꼼 고개가 나온다. 잠깐 눈치를 살피고 돌아가는 듯 했다. 후다닥. 반대쪽 벽을 향한 질주. 하필 그 한복판에 내가 있다. 생각했다. 꿈을 꾸고 있다고. 처음 농가주택에 살며 쥐 소리를 듣던 날이 생각난다. 와다닥 뛰는 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열 두간지 중 자시(子時)의 주인답게 0시에 활발했다. 도시 촌놈으로써 내게 쥐는 동화 책 속의 동물이랄까. 어쩐지 집에 비누가 없어지고 있었다. 기분 탓이라고 믿고 싶었다. 생각보다 크다. 적당한 둔기라고 잡은 게 고작 빗자루. ‘진짜 맞으면 어쩌지’라고 어중간히 내려친 빗자루에 쥐가 맞아줄리 만무하다. 쥐약을 또 놓아야 할까. 쥐약을 먹은 쥐는 집 밖으로 나가 죽는다고 한다. 구석에 놓아둔 쥐약이 없어지긴 하는데 사체를 보지 못하니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가장 확실한 만족을 얻는 건 역시 끈끈이. 눈앞에 결과가 보인다. 하지만 사체 처리가 문제다. 끈끈이에 잡힌 쥐를 본 적이 있다. 찢어질 듯 한 소리가 방에 울린다. 놀란 동료 쥐들도 함께 울었다. 한참 후 이제 죽었으리라 다가가면 벌떡 다시 곡을 한다. 검고 조그만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끈끈이를 반으로 접어 집 뒤에 묻었다. 여전히 곡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어중뜨기 농사꾼에다 말류 소설가로 살면서 그나마 책 읽기조차 멀리하니 세상의 속내를 살필 눈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가는 농촌이라는 터전이 단말마의 고비에 처해 있다는 것, 어쩌면 인간의 건강성과 흙에 대한 추억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인사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는 절박함이 조금이라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최용탁 <사시사철> 중”

농부이자 소설가인 최용탁 씨는 책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농사지으며 지은 글의 부제는 ‘사시사철 기르는 생각 기르는 마음’이다. 충주에서 농사짓는 그의 글을 읽다보면 농촌에 살며 느끼는 울분과 고통이 우리 모두 함께 겪는 마음임을 알게 된다.

가을 들판은 벼 수확이 한창이다. 대통령선거, 지방선거가 연달아 있었다. 요란한 행사는 지나갔는데 그 이후 누구도 농민을 돌아보지 않는다. 농민들이 청와대 앞에서 한 달여의 단식 농성을 갖고서야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설치를 약속받았다. 최용탁 씨의 말대로 농촌은 지금도 농민 박멸을 향해 가고 있다. 스러져가는 농촌 이야기야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쥐약을 보니 새삼 농촌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엇이 덫인지, 쥐약인지를 가려내는 건 농민 개인의 몫이다. ‘6차 산업’이 한물가니, 이제는 스마트팜 시대가 열렸다. 농민 상부를 위한다는 농협의 마트에서조차 우리밀 제품 하나 찾기 힘든 현실인데 말해 무엇할까.

“밤콩을 털고 거름까지 다 내었으니, 올 농사는 그만이다. 김장도 여러 독 묻어 겨우내 맛이 들어 봄까지 갈 것이다. 산밤도 두어 말, 고구마도 한 가마 턱은 되니, 구진한 겨울밤 간식거리도 넉넉하다.”

그럼에도 농민들이 지금 여기에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밭을 향하는 이유가 단순 배운 게 도둑질이라서가 아닌 농촌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갈수록 비통함을 더한다. 내 삶이 뽑혀져 땡볕에 버려진 쇠비름처럼 시들부들한 이유가 고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하기도 한다.”

같이 고향을 지켜내는 일, 너도 약자고 나도 약자임을 깨달아 여기 가라앉고 있는 농촌을 함께 구하자고 손을 내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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