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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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48>
  • 한지윤
  • 승인 2018.10.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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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최민자는 풍만한 가슴은 아니었으나 좀 마른 듯한 처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볼록함으로 보이고 있었다. 젖이 분비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유두도 작고 유훈도 옅은 색깔이고 겨드랑이 털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럼 내진을 해 봐야겠어요. 남자가 이상하다고 말한 것이 간단히 치료될지 모르니까.”
한 박사는 언제나처럼 환자가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준비가 끝나자, 진찰용의 둥근 의자에 앉았으나 어딘가 조금 어렵겠구나 하는 느낌을 직감했다.
치모의 발육이 나쁜 것은 별개로 하고도 한 박사는 손에 준비하고 있던 질경이 소용이 없구나 하고 느꼈다. 처녀막폐쇄증인 정도가 아니고 처녀막은 흔적도 없다. 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겨우 1센티 정도로 조금밖에 되지 않고, 거기에다 맹단이 되어 있었다.
한 박사는 재빨리 고무장갑을 손가락에 끼고 글리세린을 발라서 직장진으로 바꿨다. 예상한 대로 자궁은 만져지지 않았다. 
한 박사는 다시 환자의 서경부를 촉진했다. 손끝에 확실하게 만져지는 어떤 감각을 직감한 즉시 한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물었다.

“민자 양, 배가 아프거나 해서 혹시 의사에게 보였다거나 했을 때 헤루니아가 있단 말, 들은 적 없어요?”
“저는요, 건강해서 병원 같은 데 간 적이 없는데요.”
“그래요……?”
한 박사는 천천히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이물질을 확인하고서는
“민자 양. 이제 끝났습니다.”
하고 말하고 책상으로 돌아가 영어로 차트에 기록했다.
‘유두작음 · 체모적음 · 외음부 여성 · 소음순 발육불량 · 질 1.5㎝ 맹단 · 음핵작음 · 서경헤루니아 내에 정류고환이라 생각되는 것으로 추측됨.’
내진실에서 나오는 민자는 이제 진찰이 끝났다 싶어 다소 안심한 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 한 박사에게 보였다.
“민자 양, 이리 와 앉아요.”
한 박사는 자기 책상 앞에 환자를 앉으라고 불렀다.

“음·……민자 양. 아직 확실한 것은 말할 수가 없는데, 아가씨의 경우, 좀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생명에 관계되는 그런 나쁜 병은 아니고 단지 아가씨의 경우 질이 다른 사람보다는 얕아요.”
“얕다니요?”
“깊이가 다른 사람보다는 모자란다는 뜻 이예요. 아마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이상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군요.”
“네?”
“그러나 그것보다는 왜 나이가 되어도 있어야 할 생리가 없느냐, 그걸 조사해야 될 것 같은데. 그 검사인데…… 이건 큰 조합병원 같은데서 아마 입원해서 받아야 될 것 같군.”
“오래 걸릴까요?”
“3주정도 될까…… 명문의과대학 알고 있지요? 서울에 있는. 그 대학병원에서 해 주도록 소개해 줄 테니, 가보도록 해요.”
“여기서는 검사가 안 되나요?”
민자는 의아스럽다는 눈매를 하고 물었다.

“호르몬이다, 뭐다 하는 여러 가지 검사가 있어요. 다소 복잡하지. 설비가 없으면 무리거든. 아주 정밀한 진찰이니까.”
“입원해도 선생님이 쭉 봐 주실 수는 없으세요?”
이 환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다지 신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 박사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산부인과의 환자란 한 번 진찰받은 의사에게서 여간해서는 다른 의사에게 옮겨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믿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검사는 대학병원에 맡겨야 돼요. 내 동창생인 훌륭한 의사를 소개하지.”
한 박사는 다음 환자가 없었으므로 잡담이라도 해 보는 심정으로,
“민자 양은 몇 남매나 돼지?”
“3남매예요. 오빠와 남동생 하고.”
“음…… 그럼 집은 신당동? 출생지도 신당동?”
“아뇨. 제가 태어난 곳은 삼척이라는 시골이었대요.”

“그럼, 태어났을 당시의 일들을 좀 알고 싶은데, 무언가 어머니로부터 들은 것이 있어요? 체중이 얼마라든지, 낳고서 어떤 큰 병을 앓았다거나, 태어난 병원이라든가 하는 것들, 병원에서 출생했나요?”
“아뇨, 집에서 태어났어요. 조산원이 와 주셨대요. 태어날 때 체중이 2.8㎏이란 말만 듣고 있었어요.”
“그럼, 정상 크기인데.”
한 박사는 가능한 한 상대의 마음을 풀어서 안심시키려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아무튼, 대학부속병원에서 정식으로 진찰하기로 하고, 지금 집에서 통근하고 있어?”
“자취하고 있어요.”
“혼자서?”
“아뇨. 친구와 둘이서 아파트 빌려서 전세 살아요.”
“어머니는?”

“지금 춘천에 살고 계세요. 아버지가 토건회사에 근무하시거든요. 그래서 전근이 잦아요. 전 부모님이 신당동에 계실 때 취직을 했어요. 그래서 그대로 눌러 앉아 버린 거예요. 지금까지.”
“좋은 곳인 모양이지? 그래서…… 그 사람하고는 언제 알게 됐어?”
“작년 가을 이예요. 친구가 소개해 줘서……”
“회사원인가?”
“아직 학생 이예요. 2년 재수하고 지금 대학 2학년인데……”
“처음 애인은 아닐 테지?”
“처음은 아니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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