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없어 청정한 오지, 내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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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없어 청정한 오지, 내남마을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1.0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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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29>

농촌마을 희망스토리-은하면 학산리 내남마을
마을 뒤로는 얕은 구릉이 자리하고 앞으로는 금리천이 흐르는 은하면 학산리 내남마을 전경. 위쪽이 내남마을 1반. 아래쪽이 2반.

은하면 학산리 내남마을은 1750년 어간에 편찬된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사곡면 남당리(南塘里)로 기록된다. 마을주민 이종범 씨에 의하면 남당리라는 지명은 남쪽에 있는 뒷산에 제당이 있어 남당리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광복 전후만 해도 이 당산에서 제를 올렸으나 이후 지내지 않게 됐다.

이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학동과 거산의 이름을 따서 학산리라 하고 은하면에 편입됐다. 현재 내남마을은 2개 반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체 가구는 26가구로 이 중 귀농·귀촌가구는 5가구다.
 

은하면 학산리 내남마을 정지욱 이장.

내남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산촌마을로 마을 뒤에는 얕으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고 마을 앞으로는 금리천이 흐른다. 내남마을 정지욱 이장은 금리천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여기서 거산, 내남 다 나와 하고 소리치면 애들이 다 나와 여기 하천에서 놀고는 했다. 짱어, 붕어, 참게 등도 많이 잡았다.”

금리천이 흐르는 내남교는 총 4개가 있다

금리천에는 총 4개의 다리가 있다. 1980년대에 다리를 짓기 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벽돌과 돌들을 직접 날라 가며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금리천은 금곡천과 합수해 모산만을 따라 서해로 접어든다. 예전에는 모산만이 만입하는 해안지역으로 바닷물이 인근 거산의 거산교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내남마을 곳곳에서 발견되는 패총(굴껍질 등)의 흔적들이 이를 말해준다.

내남에는 옛 선조들이 살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내남마을에서 확인된 고인돌은 모두 4기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홍성지석묘는 은하감리교회 옆에 자리하고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대표적 거석기념물로 선사시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한곳에 정착해 마을을 이루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만든 무덤형태의 하나다. 다른 한 기는 밭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1기는 경지정리를 하면서 사라졌고 1기는 논두렁에 파묻혔다.

내남마을에는 결성장과 광천장과는 별개의 내남장이 운영됐었다고 한다. 내남장은 결성장과 광천장을 이용하지 않는 날에 인근 마을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개설됐다.

이종범 씨는 “여기 술집, 가게, 식당 등도 있었는데 해방 이후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서 사라졌다”고 말한다.

내남마을은 예전에 경주정씨들이 많이 거주한 마을로 정용해 씨는 은하면 일대의 자산가이자 유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정용해 씨는 어려운 이들을 위한 희사금을 여러 번 내놓았고 은하공립보통학교 건물 증축에 일천만 원을 희사하기도 했다. 마을에서는 이를 기리기 위해 자선비를 건립했고 묘비 글씨는 손자이자 서예가인 학남 정환섭 선생이 썼다.

마을의 유일한 종교 활동으로 은하감리교회가 있다. 은하감리교회는 지금의 자리로 옮기기 전 마을 뒷산에 위치해 있었는데 군용천막을 치고 예배를 봤다고 한다. 이후 마을사람들이 십시일반해 벽돌을 나르며 교회 건물을 지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게 됐다. 또한 내남마을은 2003년에서야 농어촌 버스가 다닐 정도로 오지마을이었다고 한다. 정지욱 이장은 “지금도 오지마을이다. 그래서 공기가 청정한 마을이고 사람들도 순하고 인심도 좋은 마을이다”고 말한다. 

새마을운동 전후까지만 하더라도 내남마을에는 두레 전통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주로 농번기에 품앗이를 다니며 대나무에 꽂은 용대기도 세웠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또한 마을 상여집이 있어 보관을 했었는데 누군가 훔쳐가고 집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는 이마저도 사라지고 없어졌다.

친자매처럼 지내는 마을주민 김대순 씨와 이순례 씨.

마을주민인 김대순(83)씨와 이순례(77)씨는 윗집아랫집에 살며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이다. 이순례 씨는 마을에서 가장 불편한 것으로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 것을 얘기한다. “겨울이면 마을 들어오는 길이 다 얼어 버스가 들어오질 않어. 병원도 가야 허고 설 대목에는 장에도 가야 허는디 버스가 안 들어오니 워떡한댜? 그거 하나 딱 불편해. 우리 마을은 다른 건 다 좋아.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지. 옛날에는 만 원 생기면 그거 가지고 참 애지중지하며 썼는디 지금은 오만 원 가져도 살 것두 읎구 다 날아가버려.”

내남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굽이지고 좁은 농로지만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맑은 공기와 순박한 마을주민들의 후한 인심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처음 맞는 사람에게도 대문을 열어주고 커피 한 잔을 내어주는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훈훈한 마을, 내남마을 사람들이다.

정용해 자선비.
홍성지석묘.
내남장이 열렸던 곳.
내남마을회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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