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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1>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다시 재소통 수술을 받았다. 성공률이 적다고 하는 수술이다. 그러나 정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는 꼭 아이가 갖고 싶다고 해서 생각 끝에 AID(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를 희망해 온 것이다.
“아이는 몇 살과 몇 살 터울인가요?”
한 박사가 물었다.
“위가 사내아이로 열한 살이 되고, 아래가 계집애로서 여덟 살입니다.”
“네에……”
한 박사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말 같습니다만, 제 아이를 낳는 것도 아닌데도 이 아이들을 귀엽게 보고 잘해 주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친엄마 같이 따르고 있지요. ‘엄마, 동생 하나 낳아요, 업어 줄게’ 하고들 있습니다.”
“이해가 충분히 갑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만 우리 병원에서는 비배우자간의 수정은 하지 않습니다. 가령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거절할 수밖에 없군요.”
한 박사의 말이 뜻밖이라 생각했는지 아내인 미숙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이란 최후의 수단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한 박사는 신씨 부부를 번갈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어떤 부부가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최소한 부인의 핏줄만이라도 가진 것이 좋으니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할 경우, 비로소 그 변칙적인 방법이지만 허락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사실은 양자라도 들이면 되는 것이지만 최소한 한 쪽의 핏줄이라도 잇고 싶어 하는 경우인데…… 댁에서는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아들과 딸 둘이나.”
대기실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었으나 한 박사의 책상 주변은 얼어붙은 듯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부인께서는 주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결혼하신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주인의 아이가, 곧 부인의 아이가 아닌가요. 가령 AID로서 아이가 생긴다 해도, 그 아이는 내 아이, 위의 두 아이는 주인의 아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는 보증할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저도 그렇지 않을 것이고 집사람도 그런 차별을 할 여자가 아닙니다.”
“그야 그렇겠죠. 가령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 박사는 이렇게 말을 해서 체면을 세운 것뿐이다. 조금도 그 말을 믿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 경우 차별감을 갖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거나 일종의 쇼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박 여사에게서 들은 토마스라는 미국 사람의 부부와 같이 젖을 물리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아이도 제 자식과 같이 되는 수도 있을지 모르나 토마스 부부의 경우는 양자와 제 자식이란 관계인 경우고 이 신씨 부부의 경우는 남편의 아이와 아내의 아이라는 점이다.
“물론 제가 말씀 드리고 있는 것은 저의 윤리관이랄까 그런 것입니다. 꼭 희망하신다면 저의 모교인 대학부속병원에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거기서는 AID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찬성은 안합니다. 둘이나 두셨는데 또 부자연스러운 짓까지 해서 한 아이가 더 필요합니까?”

“그러나 집 사람은 어머니가 한 번 되어보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본능으로 우러나는 감정이 아닐까요. 나는 그 원을 풀어 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아내에게 AID를 희망하는 것은 대개 그 남편 쪽에서다. 그건 자기가 아이를 낳게 할 수 없는 일종의 책임회피일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되고 싶다고 하시지만 지금 어머니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내 배로 꼭 낳아야만 어머니가 된다는 생각은 벌써 이 두 아이들에 대한 일종의 차별의식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박사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절대로 타협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이런 일은 한 박사에게 있어서는 처음 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사람의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어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줄곧 거절해 오고 있었다. 전부터 한 박사의 지론이었다.

한 박사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런 이야기를 박연옥 여사에게 한 적이 있었다. 박 여사는 처음엔 잠자코 있었으나 ‘한 박사께서 하는 일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해’ 하고 말한 일이 기억이 난다.
그 후에 박 여사를 만났더니,
‘한 박사가 말한 것, 얼마 후 잠이 오지 않아 문득 기억에 떠올라 생각해 보았더니 역시 한 박사가 말한 것이 옳았다고 봐’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여자 어떻게 했을까?”
“글쎄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대학병원에 갔겠지요.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면 하룻밤쯤은 울고 새웠을지도 모르지.”
“가엾지 않아. 그래도 그 남편과 일생을 함께 살려면 한 평생 아이를 낳아 보았다는 체험을 해 보고 싶은 건 본능일 텐데.”
“사람은 모든 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죽는 수가 더 많지 않아요? 행운이란 걸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하고 죽는 수도 허다해요. 그렇게 보면 아이를 낳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살아가는 일들 중에 극히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내가 낳지 않아도 내 아이다, 하는 생명에 대한 의식, 그걸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죠.”
지금 한 박사 앞에 앉아 있는 신씨 부부는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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