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이 담은 김치가 밥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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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마을이 담은 김치가 밥차로
  • 류승아 주민기자
  • 승인 2018.12.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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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모아진 배추·무

희망의 밥 응원의 찬 밥상
홍동면 농부들이 힘을 모아 김장김치 200kg을 담아 밥차에 전달했다.

굴뚝에 올라간 노동자가 일 년 넘게 내려오지 못하고 십 년이 넘은 투쟁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사회, 삼보일배는 시시해져 오체투지쯤 돼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삭발과 단식이 투쟁의 기본이 되어 버린 사회다. 우리 사회 민낯이 이렇다보니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밥차가 세 군데나 된다. 십시일반음식연대 ‘밥묵차’,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평등 세상을 향한 ‘집밥’이다.

밥차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희망이라는 밥에 응원이라는 찬으로 밥상을 차려 투쟁현장에서 나눈다. 후원회원이 다달이 낸 후원금과 농촌에서 보내오는 농산물, 그리고 밥을 짓고 나누는 현장에서 돕는 이들이 있어 밥차가 굴러간다.

얼마 전 ‘밥묵차’는 청와대 앞에서 ‘예산안을 반영한 장애인 등급제 폐지’를 주장하는 장애인 집회와 국회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4박5일 농성’ 동안 하루 세끼를 수백 인분씩 나누며 100kg 김치가 동이 났다. 그 소식을 들은 홍동의 한 농부가 직접 키운 배추로 소박하게 김치를 담아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는데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동참했다.

배추 서른 포기가 예순 포기, 백여 포기가 됐고 고춧가루 다섯 근이 열 근, 스무 근이 됐다. 젓갈부터 시작해 무, 갓, 마늘, 생강, 쪽파, 대파, 찹쌀풀, 김장비닐, 상자 그리고 택배비까지 모두 모아졌다. 이렇게 해서 돈 한 푼 들지 않은 김치 200kg이 홍동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돈으로 지불한 것은 택배비 5만 원이 전부다.

겨울이면 직접 키운 배추를 절여 파는 농부는 백여 포기 배추를 혼자 절이고 씻으면서도 싱글벙글 힘든 기색이 없었고 김장을 위해 마당과 비닐하우스를 열어준 농부도 뒤치다꺼리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한 농부는 “백남기 농민 집회에서 밥차의 따뜻한 밥을 먹고 고마웠던 기억에 오게 됐다”며 직접 기른 무를 내밀며 김장에 함께 했다. 농산물을 선뜻 내준 농부들과 자원봉사 온 청년들,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버무린 아낙들, 농산물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택배비로 돕겠다는 사람들까지 모두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이 김장에 손을 보탰다. 뒤늦게 소식을 들었다며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온 마을이 함께 한 김장을 보며 한 주민은 “홍동의 역사에 비춰 보면 밖을 향한 연대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다른 농촌은 이미 체계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번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많이 이런 일을 벌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열 상자의 김치를 보내고 영하의 날씨에 고생한 몸을 누이며 “우리가 담은 김치가 밥차라는 날개를 달고 전국으로 날겠구나”라며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달래 드릴 수 있겠지”라며 뿌듯했다고 한다.

이제 홍동의 농부들은 우리 사회 그늘진 곳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졌다. 앞으로도 그 끈을 놓지 않고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밝히는 일에 농부의 힘을 모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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