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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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6>
  • 한지윤
  • 승인 2018.12.1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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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성모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나이는 열세 살인지 열네 살인지 그런 나이였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천사 성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수태를 알리자 마리아는 깜짝 놀랐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누가복음 1장 38절)’라고 대답했어요.
한 박사와 같은 독설적인 남성이 이 구절을 읽고 ‘잉태될 수도 없거니와 열세 살 난 소녀의 대답치고는……’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요. 그것이 재미있어요. 놀란 앳된 마리아가 순간적으로 한 그 대답의 전반부는 그녀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구약성서 사무엘기에 적혀 있어요. 다윗왕이 아내 카일에게 청혼을 했더니 그녀는 땅에 엎드려 ‘왕이시며, 내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을 씻길 종이나이다.’ 라고 말예요. 이런 일화를 아주 어릴 때부터 듣고 있어서 그런 명문구를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며 성모마리아는 반사적으로 그와 같은 대답을 했는지 모르죠. 안 그래요?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이 정신박약 여자의 언어가 더욱 무겁게 생각되어져요. 한 가지도 자기 자신의 의사로 생각할 수 없는 여자에게도 본능적인 반사로 언어가 튀어나올 정도로 ‘사랑은 아름다운 것’ 이라고 가르쳐 준 다른 어른들이 그 주위에 있고, 또 그 언어가 가지는 진실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 정신박약의 여자에게도 실감을 가지고 전해 왔다는 사실, 흠잡을 데 없고 완벽하고 그 당당한 자연스러움이 우리들 사회에도 과연 있었던가 라고 생각되어요. 아무튼 나는 이 정신박약의 여자의 말에 두려울 정도로 거룩하고 위대함을 느꼈어요. 감상적일까요?
한 박사님, 정신박약자는 수학이나, 어학 같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가 없을지 몰라요. 그러나 그녀는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진리를 실천으로 보여 주었어요. 적어도 나에게는 큰 충격을 준 것 만은 솔직하게 시인해요. 우리나라 여자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못할 말을 그녀가 혼자서 말한 거예요. 정신박약자라도 ‘어머니’가 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한 박사님, 나는 마음이 무거워 이대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신부님은 한 사람 더 만나보고 가야 할 아이가 있다고 하더군요.

여우에게라도 홀린 것 같은 기분으로 여자들이 양자로 주어 버린 ‘포기하고 버리고 간 아이들을 모아둔 방으로 따라 갔어요.
아이들은 거의 다 양자로 갈 곳이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더군요.
이 아이는 미국에, 저 아이는 베네수엘라에 라는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바라보니 얼마나 귀엽게 생긴 여자 아인지 몰라요. 신부님도 역시 남자니까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를 좋아 할지 모르지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때 원장님이 ‘이 아이는 탈리도 마이드 베이비(탈리도 마이드라는 피임약으로 인해 불구의 태아가 생긴 일이 많았음)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을 조금 펼쳐 보였어요. 팔과 다리대신 손가락이 천사의 날개처럼 붙어있는 곳을 보여 주더군요.
한 박사님, 도대체 이건 어찌 된 일이예요. 그 아이는 자신이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방글방글 웃고 있었어요. 아직 6개월도 안된 아이라고 하는데 말예요. 아마 이래서 신부님 아니라도 이 아이가 보고 싶어서 모두 이 방에 오게 되나 봐요.

나는 다시 한 번 또 이 아이에게서 중요한 것을 배웠지요. 그건 인간으로서 부드러운 웃음을 띄우고 있으면 무조건 다른 사람의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을 말예요. 물론 나를 포함해서 ‘이 아이는 아직 양자로 줄 곳이 정해지지 않은 아이입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원장님은 말씀했어요. 그 때 나는 생각할수록 어리석고 부끄러운 질문을 해 버리고 말았어요. ‘양자로 얻어 갈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라고 말예요. 신부님의 통역을 들은 원장님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니죠. 천사가 주신 아이니까 데려갈 분이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통탄할 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없을 거예요. 혹시 로우리 씨 부부가 얻어 갈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 원장님에게는 확신이 있었겠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같이 절망적인 것만이 가득 찬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번영이라는 그늘 아래서 자기 정신을 잃어버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여기저기에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박사는 박 여사의 편지에 무조건 감동하지는 않았다. 한 박사는 상대의 이야기에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아니면 일부러라도 심술궂게 악의로써 해석을 해 보는 버릇이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박약모는 가령 그 아이가 ‘사랑같이 아름답고 귀엽다’고 해도 장래까지 그 아이를 만족하게 키우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영양이나마 충분히 줄 수 있을지. 또 야욕을 품은 남성이 가까이 올 때는 ‘사랑같이 아름다운 아이’도 내팽개쳐 버리고 따라가지 않을까. 감동으로 별같이 빛나게 했던 그 언어는 어디다 버렸는가 하고 사람들을 아연케 할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한 박사는 이런 우스꽝스런 미래가 예상된다고 해도 박 여사가 그 정신박약모의 아름다운 언어에 감동한 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것을 똑같이 취급해 버린다는 것은 안 될지 모르지만 가령 그 당사자가 한 말을 본인이 그대로 지키거나 아니거나 그 언어는 언어로서 독자적으로 생생히 살아갈 것이다.
박 여사의 편지에는 그런 말이 비쳐져 있지도 않았지만 아이를 죽여서 옷장속에 넣어두는 어머니란 존재가 나오면 이 나라의 언론은 곧 ‘마귀 같은 어미’라는 표현으로 쓰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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