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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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7>
  • 한지윤
  • 승인 2018.12.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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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런투로 기사를 쓴다는 것은 자기는 마귀가 아니라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어린애같은 극히 유치한 생각이다. ‘마귀 같은 어미’가 나오는 배후에는 그런 어미를 내게 한 사회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있고 또한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전체 사람들의 공동책임 이라야 한다.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중절 같은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혹은 종교적인 계율이 있으므로 정신박약모라도 아이는 사랑과 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고, 우리나라 같은 곳에서는 중절은 합법적이라는 사회상식이 있으므로 자기가 낳은 아이를 죽여서 벽장에 감춰두게 되어도 특별히 이상할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벌써 몇 해 전 일이었지만 만삭이 다 된 배를 하고 찾아온 여고생에게 한 박사는 지금 중절수술 같은 것을 하면 학생은 그 아이를 ‘죽인다’라는 의미가 돼.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여학생은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6개월에서 중절하는 거나 좀 더 커서 하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이 이론을 확대시켜 해석해 보면 ‘갓난아기를 죽이는 것이나 6개월의 태아를 중절하는 것이나 뭐가 달라요?’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물론 거기에 대한 대답이 한 박사에게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박 여사에게도 말한 것처럼 몸 밖에서도 생존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도 반박할 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유산은 임신총수의 8~15퍼센트라고 하는 통계가 있는데 4개월의 태아도 체내에 두면 100에 85정도 출생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가령 4주나 5주 정도의 극히 조기의 중절이라도 생명의 중단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제는 한 박사를 비롯한 일반인들 누구나 의식 중에는 ‘중절’이라는 것을 일상적인 의료행위라고만 생각하는 수가 예사로 정착된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있는 이상 갓 낳은 제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는 것이 무슨 나쁜 짓이겠느냐고 하면서 전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는 젊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이상해 할 것도 없다.
‘인명은 지구보다 귀중한 것이다. 낳은 아이의 생명을 소중하게 키워야 한다.’라고 외쳐대도 의사의 메스 하나로 중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령 어느 나라의 교통사고로 인한 불시의 사망자 수와 비교해 보면, 사망자의 최고 기록은 1970년에 16,765명이었다. 그 후 교통경찰, 도로행정, 국민의 노력 등으로 1979년도에는 8,783명까지 줄일 수가 있었다. 그래도 8천 명 가량이나 죽지 않았나, 라고 할 수도 있지만 8천 명 정도는 줄어든 것이다. 인명사고를 줄이려고 이렇게 필사저인 노력을 하는 반면 한편으로는, 연간 70만 명 이상의 중절을 하고 있는 사실은 큰 모순이 아닐 수가 없다.
언젠가 박 여사가,
“교통사고를 없애보려고 정부에서는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야. 한 쪽에서는 그 100배 정도의 태아들의 순을 자르고 있으니 모순이잖아?”
라고 했을 때 한 박사는,
“상관할 것 없어요. 교통경찰 중에서도 중절을 하는 사람도 있지요. 크게 생각할 것 없어요.”
라고 웃으면서 반박해 놓고서,
“전부 태어난다고 해봐요.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문제도 생겨요.”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지구상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지요.”
“어떻게 하는 거지, 그건?”
“이 지구상의 미개지에 전기를 끌어들여 텔레비전을 설치해 주는 거죠? 밤이 되어도 다른 즐거움이 생기거든. 이것이 내 차상은 아니 예요. 해외청년협력대의 젊은 사람들이 아시아의 전기도 없는 농촌에 들어가서 생각한 것이라는데, 훌륭한 젊은이들도 있지요.”
“한 박사, 난 말이야 학자들의 미래에 대한 미래학설 같은 건 믿지 않아요. 그 봐요. 4~5년 전에도 수년이 지나면 이 지구상에는 가공할 식량위기가 닥쳐온다고 떠들고 또 말한 전문가도 있었어요. 광화학 스모그가 밖에 나갈 수가 있을 것이라고 발표한 공해문제 연구소장도 있었지 않아.”
“그런데 난 말입니다, 독일의 나치가 행한 그 기분 알만해.”
얼큰히 알코올기가 돌게 되면 한 박사는 이런 엉뚱한 소리를 잘한다.
“어떻게 안다는 거예요?”

“무엇이나 사회적 제도로서 인정되면 인간이란 예사로 된다는 것 말입니다. 유태인을 죽이는 것이 인류를 위해서다, 라고해서 그 놈들은 그 당시 ‘그렇지, 그래’하고 열심히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해치운 것이라고 생각돼요. 내가 지금 우리나라 인구가 지나치게 증가하면 좋은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므로 중절을 하는 것도 사회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처럼 말입니다. 누님께서 한 박사가 하고 있는 것은 나빠, 하고 말씀해도, 내가 중절 해 주지 않아도 사회제도가 그런 이상 환자는 나보다 더 서툰 의사를 찾아갈 뿐이죠. 그 뿐인가요. 벌써 이 세상에 나와서 기득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가족들에게 불륜의 아이가 새로 나오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이니 할 수 없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이겠지. 난 이런 때 적어도 휴머니스트쯤은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돈벌이가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뼈 속에 배어든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그러는 것이죠. 아무튼 겁나는 일입니다.”
한 박사는 박 여사의 편지가 과거 한 박사와의 이러한 대화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해서 쓰여 졌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근무하는 동창생인 김충식 박사에게서 어느 날 전화가 걸려 왔을 때 한박사는 자기가 민자라는 아가씨를 부탁한 것이 비로소 생각이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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