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8>
상태바
운명은 순간인거야 <58>
  • 한지윤
  • 승인 2019.01.02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지난번에는 부탁만 해두고 그만……”
한 박사는 사과하듯 말했다. 한 박사는 자기가 꼼꼼한 성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한 건 별로 없는 것 같아.”
김 박사의 말이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 여자 입원은 했지만, 검사가 끝나자 곧 가버렸어. 나중에 문자가 왔더군. 검사결과는 자네에게 가서 물어 보겠다고 말이야.
“할 수 없군. 아직 여기 오지는 않았어. 그건 역시…”
“메루(남성)야, 그건.”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
“섹스 구로마틴은 음성·염색체는 46/XY, 뇨의 17KS는 2.7㎎ 고나도트로핀은 24m㎍, 에스트로겐은 27㎍, 이런 결과가 나왔어.”
“본인에게는?”
“글쎄말이다. 아직 판단이 끝나기도 전에 가 버렸으니까……”
“정류고환이 있었다고 생각되는데, 나는 서경헤루니아라고 들은 적이 없느냐는 말만 해두었는데.”

“그게 암이 되면 곤란하니까 수술해야 될거야. 인조질의 수술까지 하려면 우리 병원의 최영환 선생이 잘 하는데, 그 때는 확실하게 말해 주어야 될걸.”
한 박사는 전적으로 김 박사의 의견에 찬성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되었다.
인조 질을 만들어주면 성행위는 가능하지만 도의적인 문제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여자의 성기구조와 똑같이 해 준다면 이것은 진실한 여자가 아니란 것을 본인에게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된다. 본인이 남자를 속이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병원이 그것을 속이는 것에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짓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김충식 박사의 이론이고 또 일반적인 상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박사는 꼭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자기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그 정신적인 문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민자의 경우 한 박사로서는 그녀의 심정을 아직 알 수는 없으나 본인이 자기를 진정한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여자로 성전환해 주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따르는 의학적 기술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능을 빼고는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가능한 일이다.
한 박사는 오랜만에 동기생인 김충식 박사와 용무 이외의 것도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날 오후 이서영 씨가 오랜만에 전화도 없이 진찰실에 불쑥 찾아왔다.

“지난번에는 좋은 선물을 받고도 답례도 못해 미안합니다.”
한 박사는 인사를 했다. 난소조영의 검사가 끝난 뒤 양우석 씨 부부에게서 한 박사 앞으로 호박색을 띈 와이셔츠 한 개가 보내져 왔다. 몸치장에 관심을 쏟지 않고 있는 한 박사는 그런대로 입을 수 있겠구나 라고만 예사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인 윤미는 이건 와인칼라라고 하는 색으로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메이커라고 했다. 한 박사가 항상 입고 있는 것 같은 백화점의 바겐세일에서나 파는 것과는 달라서 아무래도 수십만원 정도는 될 듯 싶었다.
“이건 지나친 사치인데.”
한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 후 고맙다는 인사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한 박사나 양 씨 부부도 이것으로서 일단은 끝이 났다, 하는 생각을 서로가 가지고 있었기에 한 박사는 이서영 씨를 보았을 때 다소 의외라고 느꼈다. 한 박사는 그녀가 어떤 크레임을 하러 온 줄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의사들에게는 환자의 파워에 겁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다 같은 빠른 진단, 같은 치료를 해도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는 케이스가 있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예전 같으면 운이 나빴다, 라고 하든지 아니면 체질에 맞지 않았다든지 이런 식으로 그냥 엄벙덤벙 넘어 갈 수 있었다. 요즘 환자들은 그렇지 않다. 죽는 것은 모두 의사의 책임이라고 말한다. 한 박사도 역시 반사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사실은 그 테스트를 한 뒤에 몸이 좀 이상한 것 같았어요.”
한 박사는 과연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다.
이서영 씨는 다시 말을 이어,
“생리가 없어졌어요.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는데요.”
냉도 많아졌다는 것이다. 바륨을 먹고 위 검사를 한 후라도 대변의 색깔이 변하는 법인데 다소의 후휴증은 당연한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몸도 피로하고 열도 나는 것 같고 요즘은 몸져눕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남편은 당신도 갱년기에 접어들었으니 그 정도의 변화는 당연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해서 페스럽게 오기도 민망해서……”
안색은 수척해 보였으나 웃는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진찰해 보면 알 수 있지만 그걸로 인해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요……”
“선생님, 박 여사 어제 돌아오신 것 알고 계세요?”
“아뇨, 아직.”
“전요, 결단력이 없잖아요. 선생님 병원에 갈까 말까 며칠이나 망설였어요. 어제 박여사에게 의논이라도 할 참으로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어머, 2시간 전에 도착했어요.’라고 하시면서 ‘망설일 것 없어요. 갔다 와요..’라고 권하더군요.”
환자가 좀 뜸해졌다. 검뇨를 하기위해 이서영 씨가 나간 사이 한 박사는 박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