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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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9>
  • 한지윤
  • 승인 2019.01.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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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한 박사가 말했다.
“방금 이서영 씨가 오셔서 누님이 돌아 오셨다기에…… 별일 없으셨죠?”
“그래요. 별일 없었고, 오늘 아침부터 집안 구석구석 정리 중이예요.”
“시간 나는 대로 놀러 와요. 이번여행 이야기를 천천히 해줄 테니까.”
“그러지요.”
한 박사가 전화를 놓자, 나이분 간호사가,
“선생님!”
하고 한 박사를 불렀다.
“이서영 씨 풀러스인데요.”
임신반응을 말하는 것이었다.
“뭐?”
한 박사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틀림없어?”
“지금 다른 환자는 없는데요.”
유리판 위의 백탁한 임신반응을 들고 와서 보여 주었다.
“틀림없는데. 올 봄은 의외로 홈런이 많은데……”
이서영 씨가 다시 진찰실에 불려 들어 왔을 때 한 박사는,
“부인, 큰 일 났는데요.”
하고 웃었다.
“암인가요?”
“임신입니다.”
“임신? 거짓말……”

“그래서 나도 어리둥절한 겁니다. 지난 번 단념하라고 했죠. 아직 입술에 침도 마르기 전에 이렇게 되니…… 이런 결과가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이리저리 끌어서 명의로 보였을 텐데……”
“그럼, 정말인가 보죠?”
이서영 씨의 얼굴에선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간혹 있는 일입니다. 그런 검사를 한 후에 이런 일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한 박사는 변명하듯 말했다. 이번 임신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테스트 자체가 난관을 뚫는 작용을 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는 이서영 씨의 난관이 가능적으로 처음부터 정상이었으나 조영제가 잘못 들어가지 않았나 하는 가능성이다. 이건 한 박사의 기술상의 실책이 아니고 흔히 신경질적인 사람에게는 조영제를 넣거나 하면 듀발·스파스므스라는 난관경련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진정제를 투여하고는 있으나 자율신경실조에 의한 기능 장애에 의해서 조영제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마치 난관자체에 어떤 결함이 있는 것처럼 시진에 나타나게 된다.
이서영 씨는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그 이유야 어떻든 여자가 앞에서 울고 있으면 남자는 어떻게 해야 될 줄을 모르는 것이다.
“주인에게 전화하고 싶으시죠?”
한 박사는 이서영 씨를 달래어 본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인은 오늘 서울에 갔는데”하고 웃으면서 전화버튼을 눌렀다.
“언니예요?”
서울의 전화에 나온 사람은 양우석 씨의 누님이거나 처형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박사는 이서영 씨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갔어요? 그래요……? 아뇨. 좀 알릴 일이 있어서요…… 아뇨, 저…… 내가 말예요. 임신한 것 같애요.”
이서영 씨의 목소리는 파도같이 몰려오는 감동을 숨길 수가 없는 듯한 음성이었다.

“네…… 그래요. 병원에서도 단념하라고 해서 설마 임신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한 박사는 빙그레 웃음을 띠고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이서영 씨의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지만 한 박사가 단념하라고 한 것이 마음에 걸렸고 어쩐지 간호사 앞에서 위엄이 서지 않는 듯했다.
그 때다. 접수부의 아가씨가 민자의 차트를 가지고 들어와서 한 박사의 책상위에 놓고 나갔다.
전화를 끝낸 이서영 씨는 다음 진찰할 날짜와 여러 가지 주의 점을 말하고 내보냈다.
한 박사는 조금 휴식을 취하고서 최민자를 불러 들였다.
“오랜만이군. 언제 퇴원했어요?”
“2주일 정도 됐어요.”
“그래, 김충식 선생의 진단은 어땠어?”
하고 물으면서 한 박사는 볼펜의 뒤끝으로 차트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버릇은 무엇을 주저할 때나 곤란한 일을 당했을 경우 곧잘 하는 버릇이었다.
“대학병원에는 결과를 들으러 가지 않았어?”
민자는 약간 까무잡잡한 얼굴로 싱긋 웃고 나서 말했다.
“이 곳으로 결과를 알려오지 않았어요?”
“자세한 것은 못 들었는데. 이건 직접 민자가 김충식 선생에게 들어야 하는 건데. 이 곳에 와서 결과를 묻는 것은 내 생각으론 잘못된 일이지.”
“…………?”

“결과는 직접 김충식 선생에게 들어봐요. 그건 그렇고 사귀는 남자와는 그 후 어떻게 됐지?”
“싸우고 헤어진 것도 아니예요.”
 “음………”
“1월 5일이 그이의 생일 이예요. 그래서 선물했더니 ‘고마워, 별일 없어?’라고 전화해 왔어요.”
“뭘 선물했지?”
“와이셔츠요.”
“김충식 선생이 검사결과 이야기 하지 않았어?”
“선생님과 똑같은 말씀만 하셨어요.”
“뭐라고?”
“복부에 헤루니아 같은 것이 있다고요. 그대로 두면 더 커질지 모르니까 수술해 떼 내자고 하더군요.”
“그렇겠지.”
“그리고 질도 깊이가 얕고 아마 자궁도 좀 이상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던데요.”
“그래?”<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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