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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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9>
  • 한지윤
  • 승인 2019.03.2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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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누님이 가신 후 그 길로 혼자 산책을 했었지요. 돌아올 때 항도의 성당에 들려 마테오 신부에게서 맥주대접을 받고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어머, 그것 참 잘했군요.”
“돌아가신 주인께서 기증했다는 ‘나자렛 예수’의 그림도 보고 왔지요.”
“예술적이 아니었죠?”
“예수의 손이 더러워져 있다고 서로 이야기 했지만 이 문제는 언젠가 다시 이야기합시다, 지금 잠깐 생각이 나서 의논하려고 전화 드린 건데, 언젠가 양자를 키우고 있다는 토마스 씨란 사람 이야기 한 적이 있죠?”
“그래, 있지.”
“그분, 누님과 직접 잘 아는 사이인가요?”
“아는 분이예요. 왜 그러지?”
“그 때는 농담 삼아 말했지만 양자 한 명 데려 가지 않을까 해서……”
“그 여자 벌써 아기 낳았어요?”
“아뇨, 아직 지금부터입니다. 어쩌면 유산이 될지도 모르겠고 해산 때 내 알아주는 의술을 발휘해도 죽을지도 모르지요.”
한 박사는 박 여사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농담을 잘 하는 버릇이 있었다.
“죽는 편이 좋은 아인가 봐?”
 박 여사는 조용한 말소리로 되물어 왔다.

“주위 사람들은 그러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태아의 아버지에게 정신 장애가 있고 여자는 귀가 난청이거든. 나, 말입니다. 그 말 들으니 생각이 떠오르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이를 죽이는 것에는 비교적 관대한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뚱딴지같이.”
“옛날부터 전통이 있거든. 그러나 아이를 버리는 데는 이상할 정도로 신경질적이고 용서가 없어요. ‘아이를 버린다는 것은 마귀 같은 어미’라고 하거든. 나는 이 점 확실하게 해 두고 싶습니다. 어느 쪽이냐 하면 죽이는 편이 죄가 더 무거운 겁니다. 버리는 편은 죄가 가벼워요. 난 죄라는 것도 우리 동양 윤리로서만 알아요. 내 자신은 지금 무거운 쪽, 나쁜 쪽을 모두 해치우고 있는 셈이지.”
“그런 양친에게서 난 아이는 꼭 그 양친의 유전을 받아 같은 아이가 되는 거예요?”
“꼭 그렇다고 정해져 있을 리가 있나요? 지금 의료의 큰 결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자연도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하고 있지만 유산을  한사코 방지하려 하지 않아요. 유산은 필연성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기형아는 신의 배려로 낙태가 되게 되어 있어요. 그것을 일개 인간이 인명존중이란 이름 밑에서 못하게 방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살 힘도 없는 병적인 아이도 태어나게 돼요. 내가 아는 사람의 이야긴데 자기 아내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절대로 못하게 했대요. 자연으로 낳을 수 없는 아이라면 그래도 버리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런 예는 특별한 케이스지만 자연으로 출산하는 이의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의사에게 보일 필요도 없어요. 그래도 어디까지나 생명을 구하라니까.”
“도태란 말, 영어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영어? 알듯한데 모르겠는데, 뭐라지?”

“셀렉션 이예요.”
“셀렉션? 셀렉션은 알고 있어요. 고른다, 선택한다는 말 아닙니까?”
“셀렉션에는 도태란 뜻도 있어요.”
“허, 그렇군. 인간이 셀렉트 하면 선택이 되고 ‘신’이 셀렉트 하면 도태가 되는 것이군.”
“아라비아 사람들은 지금도 사촌과의 결혼이 많아요. 그래도 기형아는 나오지 않아요. 그건 태어나 신생아의 사망률이 많다는 형태를 빌어서 셀렉션이 되어 건강아만 남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닐지 몰라.”
“그렇겠군.”
“그 아이가 만일 자연으로 출산된다면 아마 건강한 아이일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 토마스란 사람에게 물어나 봐 주시죠. 또 양자 얻을 것이냐고. 그리고 그 아이의 유전인자에 대해 문제 삼지 않을 것인지도.”
“좋아요. 물어 볼게요.”
“고마워요, 누님.”
통화가 끝나고 전화기를 놓고는 한 박사는 딸 유리에게
“이제 용무는 끝났어. 밥 먹으러 가자.”
하고 다정히 말했다.
한 박사는 화요일에 박선영이 약속대로 진찰받으러 올까하고 신경 쓰고 있었으나 오전 중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차트를 찾아보면 주소도 전화번호도 알 수가 있었지만 한 박사는 오전의 일은 그만 끝낸 것으로 하고 점심식사나 할까하고 일어서는데 여위기 위해 먹지 않는다고 하는 영은이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은이가 어젯밤, 졸도했다는 이야기다. 이 번이 두 번째였다. 반달 쯤 전에 의식을 잃었을 때는 놀라 시립병원으로 가서 렌트겐, 혈액검사 심전도에서 뇌파까지 조사를 했었다. 그 결과 가벼운 빈혈로서 혈압이 낮은 것 이외에는 별 이상은 없다고 했었다. 그러나 이 번 두 번째 졸도로 걱정도 되고 먹는 것도 겨우 몇 숟가락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입원이라도 해서 정양이나 해 보라고 권했더니 한 박사의 병원이라면 하고, 본인이 희망하고 있어서 받아 줄 수 없느냐는 전화였다.
“내과에 입원해야 될 일이지만 본인이 그렇게 희망하고 또 기분전환을 위한 것이라면 와도 좋습니다. 학교는 어떻게 하지요?”
“지금, 학교 같은 건 생각할 여지가 없어요. 학점이 모자라면 한해 더 하면 되지만 지금 같아선 모녀가 다 쓰러질 것 같군요. 건강을 회복시켜야 될 것 같아서요.”
“그렇다면 데리고 오십시오. 독실은 좀 어렵겠는데. 입원환자가 많고, 또 빈 방이 있어도 이런 경우에는 혼자 있는 것보다는 마음에 맞는 사람과 둘이서 있는 것도 좋을 겁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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