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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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류”
  • 조남민 칼럼위원
  • 승인 2019.04.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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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우리 동네로 발령받은 어느 목사님이 전도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다음 주일에 꼭 교회에 나오세요. 아셨죠?” 동네 아저씨는 가타부타 말이 없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류.” 아저씨가 교회에 나오지 않은 것을 눈치 챈 목사님이 다음에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번에 교회에 나온다고 하시더니 왜 안 오셨어요?” 그러자 아저씨는 “내가 온제 간다고 했슈, 알았다고 했지.”

(사례2) 홍성 5일장을 같이 보러 다니던 할머니 두 분 중의 한 분이 사정이 생겨서 시장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시장에 다녀온 할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집이 말여, 저번 장에 비해 이번 장이 좀 워뗘?” 그랬더니 이렇게 답변이 돌아왔다. “그류.”

‘그류’라는 말은 우리지역에서 아주 흔하게 쓰는 말이다. 뒤쪽을 올려서 말하게 되면 ‘그래요?’의 의미고, 내려서 말하게 되면 ‘그렇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천천히 말하면서 억양을 주면 약한 비아냥의 뜻을 포함하고 있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면 확신의 뜻이 있으며, 성조가 뚜렷하면 ‘그래서요? 나보고 뭐 어쩌라고’처럼 시비조의 뜻이 포함돼 있다.

‘사례1’에서는 목사님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교회에 간다고 말하지는 않은 것인데 목사님은 그것을 약속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 목사님은 충청도 사람들의 심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정서상 눈앞에서 거절을 하지 못한다. 넉넉한 인심이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는 곳이기에 남에게 뭐 하나라도 더 주려고 할지언정 남을 곤란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는 습성이 기본으로 배어있다. 특히 시골로 갈수록 더욱 그러하지만 면전에서 남을 타박하거나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일은 보기 드물다.

‘사례2’에서는 ‘그류’가 더욱 확장된 모습을 보인다. ‘(그저) 그렇다’라는 뜻으로 쓰이면서 아쉬움과 여운을 남긴다. 사실 충청도 사투리의 대부분이 이렇게 말이 섞이면서 축약된 형태가 많다. 흔한 우스개 소리로 “이봐 자네, 보신탕 먹을 줄 아는가?”를 줄이면 “개 혀?”가 되고,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끔씩은 먹네”를 줄이면 “쫌 혀”가 된다. 느릿느릿 속터지는 충청도 사투리의 본질은 뭐하나 급할 것이 없이 살아온 여유로운 삶에 기인한다. 각 지역의 사투리에는 그 지방만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영화 ‘황산벌’에서는 경상도 말을 쓰는 신라의 김춘추와 함경도 말을 쓰는 고구려의 연개소문, 충청도 말을 쓰는 백제의 의자왕이 각각의 사투리로 회의하는 우스운 장면이 등장한다. 아마도 백제 의자왕의 어전회의는 모두 충청도 사투리를 썼을 것이라는 상상이 쉽게 되면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주는 최근의 영화 ‘말모이’는 사투리가 왜 필요한지, 사투리가 뭐라고 목숨 걸고 이어가려고 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사투리를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동네 사람이 우리 동네 말로 할 때 가장 정확한 의사표현이 이루어지고 소통이 확대된다.

사투리는 표준어에 비해 열등하지 않고 표준어는 사투리보다 비교우위에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투리에는 정이 묻어있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또 그 위의 누군가가 주변사람들과 함께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던 다정다감한 언어다. 객지에 나가서 우연히 우리 동네 사투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정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다. 사투리는 더 이상 촌스러운 것이 아니며 그 지역 고유의 문화경쟁력을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이제 서울을 한 시간 만에 가는 시대가 열렸다. 우리도 서울에 자주가고 서울사람도 자주 이곳에 올 것이다. 어쩌면 빨라진 기차속도만큼 우리의 사투리도 빠르게 사라져가지 않을까…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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