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46일 동안 단식한 ‘유민아빠’ 김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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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46일 동안 단식한 ‘유민아빠’ 김영오
  • 최선경 논설위원
  • 승인 2019.06.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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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C가 만난사람<6>

사고 원인·구조 과정 ‘의혹투성이’, 촛불 밝혀준 홍성군민들께 고마워
다시는 아픈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호소하는 일이 없는 나라가 됐으면
세월호특별법 통과 위한 단식이‘보상금 노린 수작’ 음해·조롱으로

‘유민아빠’ 김영오(51·사진) 씨를 홍성에서 만났다. 김 씨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홍성유족회와 함께 지난 22일 국회 앞에서 과거사법 개정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홍성을 찾았다. 

2014년 ‘세월호특별법’(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6일 동안 단식을 해 ‘세월호 투쟁’의 상징이 된 ‘유민아빠’는 5년이 지난 지금 귀농교육을 받으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키 173㎝에 몸무게는 57㎏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보기엔 너무 말라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컸다. 

Q. 요즘 근황이 어떤가?
“벌써 5년이 됐네요. 6개월 전부터 전남 무안에서 귀농교육을 받고 있어요. 밥 세 끼 먹을 정도만 농사지으면서 앞으로도 전국 곳곳의 슬픈 목소리 들어주고, 아픈 곳 찾아가 힘을 보태주면서 그렇게 살려고 해요.”

Q. 단식할 때 어떤 생각으로 버텼나?
“억울하니까, 침몰 이유도 모르고 왜 구조하지 않았을까? 정말 답답했죠. 유민이를 팽목항에서 기다리면서 비록 이혼은 했지만 아빠로서 최소한 유민이의 억울한 죽음의 이유는 밝혀야겠다고 다짐했죠. 막상 단식 30일이 넘어서면서부터는 두려운 마음도 생기더군요. 그래도 최선을 다하다 죽으면 오히려 행복할 것 같았어요. 유민이 때문에 버텼습니다.”

Q. 그동안 많은 분들을 만났을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은?
“얼마 전 참사 현장인 동고차도에 들어갔을 때 섬에서 어떤 청년을 만났어요. 단식할 때 고등학생이었다는 그 청년은 언론이 잘못돼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기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대요. 그날 이후 정말 기자가 됐다고 ‘기자증’을 보여주더군요. 사실 기성세대 때문에 세상이 안 바뀌고 있는 거지 젊은이들을 보면 조금만 더 버티고 노력하면 세상은 바뀔 것이란 희망이 생겨요.”

Q.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를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그건 이미 2015년부터 알고 있었던 거예요. 세월호 DVR(디지털영상저장장치)은 참사 일어나고 두 달 뒤 6월 22일에 건진 건데요. 우리 유민이 휴대폰이 바다에서 7일 만에 올라왔어요. 이미 휴대폰이 쪼개진 사이에 소금이 껴서 하얗게 부식돼 있었어요. 휴대폰도 7일 만에 그렇게 되는데 그 DVR은 부식된 부분도 없고 너무 깨끗했어요. 두 달 동안 물속에 있었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그때부터 의심했어요. 누군가 바꿔치기했고 조작한 거라고요.”

Q. 진상 규명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특조위 2기가 활동하고 있지만, 수사권이 없어 1기 특조위가 조사한 내용을 재검토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자료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검찰 특별 수사단을 통한 전면 재조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Q. 홍성까지 오셔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하는 이유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4월 16일부터 딸 유민이가 발견된 4월 24일까지 8일 동안 애가 탔어요. 지금도 그 시기만 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가족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고 싶은 심정을 69년 동안 안고 살아온 분들 앞에서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전 국토가 100만 학살 피해자의 무덤이라는 현실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죄송하고, 참혹한 진실을 모르고 외면하는 현실에 부끄러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 왔습니다.”

‘유민아빠’ 김 씨는 지난 5년간 매주 촛불을 밝혀준 홍성군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아픈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호소하는 일이 없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보도연맹, 5·18민주화운동, 대구지하철 사건 등 참사나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당한 억울한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거짓이 진실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김 씨는 유가족들과 함께 국회를 향해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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