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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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79>
  • 한지윤
  • 승인 2019.06.0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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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만일 아내인 윤미가 만들었다면 한 숟가락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박사는 내키지도 않는 단팥죽을 먹으면서 전쟁 직후 식량이 극도로 귀할 때 좋고, 싫고 할 것 없이 아무 것이나 먹었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 박사가 테이블 위에 내놓은 수술비를 넣은 봉투는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한 박사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돈을 받아야 된다고 설득해서 박선영은 겨우 받아 두기로 했다.
“꼭 선생님 뜻이 그렇다면 받아 두겠어요. 영수증을 써야겠죠?”
한 박사는 웃으면서,
“영수증? 글쎄나…… 그렇지, 병원경리는 그걸 바랄걸.”
“뭐라고 쓰죠? 수술비 돌려받은 금액이라 써요?”
“음, 정확해서 좋은데. 그렇게 쓰지.”

한 박사는 영수증을 쓰고 있는 선영의 머리칼 때문에 조금 가려진 옆모습을 눈여겨 바라보고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단순하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이 여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순수하게 티 없이 살아가는 듯 보였다.
한 박사가 박선영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 창구에선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모녀 같은 환자였다.
한 박사의 특별한 관심을 끌지는 않았으나 접수에서  작성한 차트에 의하면 임신의 진단은 다른 곳에서 받았으나 그 병원에 다닐 수가 없어서 이 곳 한 박사 산부인과에서의 진찰을 희망한다고 쓰여 있었다.
“모진선 씨 군요.”
한 박사는 차트만 보고서 환자를 확인했다.
“네. 그렇습니다.”
“어디가 편찮으신가요?”
대답이 없었다.
한 박사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는 순간, 같이 온 어머니인지, 시어머니인지 나이가 든 노부인이 대신 대답을 했다.
“이 아이는 제 며느리입니다. 이 아이가 임신이 된 것 같습니다. 며느리의 친정집이 있는 천안의 병원에서 그 동안 다녔으나 멀기도 하고 그 쪽 선생님이 평판도 좋지 않고 해서 선생님께 보이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한 박사는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노부인의 나이는 육십 중반쯤 될까? 염색도 하지 않은 흰 머리 그대로였다. 단정하게 앞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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