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배우 손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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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배우 손현주
  • 이원기 칼럼위원
  • 승인 2019.10.0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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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부터 나흘에 걸쳐 열렸던 홍성국제단편영화제는 우리 홍성을 여러 면에서 대·내외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뜻깊은 행사였다. 이 멋진 축제에서 필자는 둘째 날, 손현주 배우와 관객과의 만남의 자리에 동참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그것도 인간 손현주의 감춰진 지난날을 들춰내고 증언하는 악역으로 나가게 됐으니, 뜻밖에 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유명인을 만났을 때 일반 사람들은 유명인들의 성공보다는 좌절이나 웃지 못 할 실수 따위를 듣게 될 때 그 인물에 대해 좀 더 친근하게 느끼게 되고 그 사람의 진면목을 실감하게 마련 아닌가!

손 배우와 그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이송 집행위원장과 필자는 학연으로 긴 세월 인연을 맺어온 사이다. 1984년에 사제지간으로 처음 만난 손 배우와 필자 사이는 몇가지 면에서 좀 색다른 관계다. 먼저 둘 사이의 인생 대차대조표를 보면 손 배우가 늘 손해를 보면서 살아왔다. 그는 비단 나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받기보다는 주기를 즐기는 편이다. 각자의 일로 인해 한동안 적조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뭔가를 만들거나 보내온다.

2015년 그가 모처럼 출연한 영화 ‘악의 연대기’ 사건만 해도 그렇다. 그 해 5월이었을 것이다. ‘화술,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학생들이 “교수님, 나오신 영화 잘 봤어요!”라며 웃길래, “영화출연? 그런 적 없는데!” 그런 문답을 주고받은 사흘 뒤인가 손현주 배우에게서 문자가 왔다. “영화보시면 이원기란 이름도 살짝 찾아보세요. 사랑합니다.” 그래서 성의가 고마워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내 이름은커녕… 그런데 영화가 다 끝나고 보조자막이 나오기 직전에 후일담처럼 극 중 경찰서장이었던 손배우가 “이원기 교수님 잘 계시냐?”라고 묻자 극 중 신참 경찰관이었던 배우가 “예! 잘계십니다.”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로서는 이루 형언 할 수 없으리만치 감사하고 행복했다.

훌륭한 삶이 거의 다 그렇듯이, 손배우의 배우 인생도 처음부터 걸출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 시절, 손배우 동기 중에는 손창민이 아이돌 스타였고 졸업 직후에는 가수 원미연이 ‘이별여행’으로 빅히트를 치고 있었다. 필자가 손현주라는 학생을 주목한 것은 다음 두가지 에피소드 때문이었다. 1985년 말, 2학년이 될 무렵 손현주 학생은 갑자기 학교를 관두겠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의사였기에 가정형편 때문도 아닌데…

“휴학하고 뭐 할건데?”, “세계여행이나…” 안성캠퍼스 시절이라서 안성 내리로 데리고 가서 밥 사주고 술 사주면서 겨우 휴학을 만류했는데 3학년 2학기에 초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셰익스피어 작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아버지 역을 맡아서 열심히 준비하던 그가 공연 두 주일 남짓 남았을 때 턱이 깨지고 발목이 골절되는 참사를 당하고 만 것이다. 연습 스트레스를 푼다고 마신 술로 인해 배수로에 떨어지며 생긴 사고였다. 그러나 대학생 손현주는 결사적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세계 연극사상 목발을 짚고 무대를 지킨 유일한 캐퓰릿이 됐다. 실로 놀라운 집념의 승리였다. 그 뒤로 그는 연기의 폭이나 깊이에서 동기들보다 앞서 나간 까닭에 줄곧 주인공 역을 꿰찼는데, 그때마다 엉뚱한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곤 했다. 그의 상대역 여배우들이 그의 연기력과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서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생기곤 했던 것이다.

그는 동문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는 필자가 ‘연기’수업에서 자신있게 F학점을 줬노라고, 그것도 “연극과 사랑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무엇을 택하겠느냐?”란 질문에서 자신은 연극학도 답게 “연극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죄로 학점이 펑크났다고 말하곤 했다. 필자는 그런 기억이 없다. 인간 손현주의 넉넉한 마음과 유머감각을 엿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이번 영화제의 상연작 중 하나였던 ‘숨바꼭질’에 출연하여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듯이 이제는 세계의 모든 배우들 중에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오른 손현주가 됐다.

그가 1991년 KBS 공채 14기 탤런트로 출발해 ‘솔약국집 아들들’의 큰 아들 역을 비롯한 숱한 역할에서, 또한 몇몇 영화와 연극 ‘햄릿’에서의 햄릿 역으로 명연기를 보여주기까지 그가 걸어온 험난한 배우의 도전얘기는 그를 직접 보러 온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안겨줬다. 그날 연기학과 1학년생이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주로 무엇을 하면서 보내시는지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멍 때리며 보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연기를 준비하고 표현하려 애쓰는지를 말해주는 또 다른 언표이기에 필자도 크게 감동했다. 그가 일을 쉴 때, 지인들과 어울리며 술을 가까이 하고 국가대표급 실력으로 족구에 빠지는 것도 일종의 힐링인 셈이다. 다음날 새벽부터 촬영준비를 해야 함에도 끝까지 따라온 학생들과 필자를 위해 최대한 늦게까지 남아서 밥이며 술이며 실컷 사주고 평소처럼 소탈하고 따뜻한 모습 그대로 있다가 떠났다.


이원기<청운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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