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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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에서
  • 전만성(화가)
  • 승인 2009.07.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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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오래 전 이야기, 그러니까 옛날이야기가 되겠다. 학교에서 음악수업을 풍금을 놓고 하던 시절의 이야기. 그것도 풍금을 이리저리 옮겨다 놓고 수업을 해야 했던 이야기니까 지금 학생들이 듣기에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쯤 되겠다. 

담임선생님이 여자분일 경우에는 그래도 좀 나았다. 남자 담임선생님일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수업을 좀처럼 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풍금을 켜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러셨을 거다. 일 년에 한두 번 음악수업을 하는 때는 잔치날 같았다. 상냥한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힘센 남자 아이들이 풍금을 날라 왔다. 선생님이 한번 풍금을 손으로 꾹 누르면 그 소리는 내 마음을 높이 띄워 올렸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마 나는 학교에 남아 그림을 그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더위에 지쳤던 원추리, 나리, 붓꽃이 해질녘 시원한 공기 속에서 싱싱하게 웃고 있었다. 

그 때였다.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난데없이 소리의 소나기가 쏟아졌다가는 사라졌다. 사라졌다가는 다시 쏟아지는 소리의 소나기.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그것은 순식간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상과 같았고 공중에서 명멸하는 빛의 가루같이 아름다웠지만 형체가 없었다. 

무엇일까?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소리를 따라간 곳은 교실 창문 아래였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선생님과 이이들이 합창연습을 하고 있었다. 붕어처럼 입을 동그랗게 벌린 아이들이 선생님의 손동작에 맞춰 노래를 이어가다 끊었다 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아빠를 그리워하는 여자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앉은뱅이 채송화와 수줍은 봉숭아, 새끼줄을 타고 올라가는 씩씩한 나팔꽃, 그리고 작은 초가집과 어린 소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노래를 부르던 그 아이들이 자라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다시 아이들을 낳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날, 해질녘 학교 화단의 그 꽃들과, 그 때 공기와 함께 아주 선명하고도 아름답게. 

세월은 갔어도, 그 때의 그 마음, 동심은 간직하고 싶다. 그 노래를 오래도록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홍주신문 제81호(2009년 7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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