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고전《사기(史記)》는 사마천(기원전 145년~86년으로 추정)이 사관인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유언을 따르고자 궁형(宮刑)의 치욕을 딛고 저술한 통사체 역사서이다. 전설의 황제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로부터 한 무제(漢 武帝) 때까지 2000년을 아우른 책으로 특히 그 중에서도《사기열전》은 주(周)나라 붕괴 후 등장한 50개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하여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사기열전》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온갖 인물의 결정체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역사적인 영웅들도 모두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려준다. 이 책은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일한 인물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때로 계급을 초월하여 기상천외의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기도 하다.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꺾네. /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 신농(神農), 우(禹)나라, 하(夏)나라 시대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 아! 나는 떠나련다, 운명이 쇠했으니….
이것은《사기열전》의 첫머리를 장식한 <백이열전(伯夷列傳)>의 한 대목이다. 백이와 숙제는 상(商)나라 제후국의 왕자들로, 주 무왕(武王)이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을 응징하려 하자 불충이라는 명분으로 반대했다. 주 무왕이 그러한 반대를 무릅쓰고 상나라를 치자 백이와 숙제는 명분이 통하지 않는 혼탁한 세상과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살았다. 위의 노래는 그들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지은 것으로, 결기 어린 도저한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사마천은 이 두 인물에 의탁하여《사기》전체의 의도를 말하려 했다. 그는 어진 덕망을 쌓고도 끝내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의 운명을 슬퍼하며, 정의로운 자가 망하고 불의한 자가 흥하는 현실 세계의 냉혹성과 그 속에서 겪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성찰했다. 이는 다시 하늘의 도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으니, “천도시야비야(天道是耶非耶), 즉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는 말은 그것을 잘 나타내는 핵심 대목이다. 여기에는 사마천 자신의 참혹한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왜《사기열전》은 인간학 교과서인가
《사기열전》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마천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겪는 고충을 거의 모든 인물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해 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그리고 시대를 비껴간 자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는 교훈 역시 적지 않다.
사마천은 되도록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우선적으로 고르고 거기에 평가를 더했다. 독자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러지 않은 자는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인물의 행동에서 본받을 만한 가치가 전혀 없으면 아예 그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전기에 집어넣기도 한다. 진나라 말기에 권력을 휘둘렀던 환관 조고(趙高)의 경우, <이사열전(李斯列傳)> 등 다른 사람들의 <열전>을 통해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마천은 인물들의 개별적 유형에 입각해서 자신을 포함한 그 당시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런 근거를 그 이전의 경서(經書)와 제자서(諸子書)들뿐 아니라 민간의 구전에서도 취하는 유연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사기열전》의 독특한 인물의 선택 서술 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또 독자에게 극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 대립되는 인물을 같은 편에 놓은 경우도 많다. 또한 유림, 혹리, 자객, 유협, 골계 등 유사한 직업군을 한데 묶어 차례로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인물에 대해 나열식으로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그 인물을 제대로 보여 주는 특징을 제시하는 데 주력했다. 열전의 두 번째 편인 <관안열전(管晏列傳)>을 보면 관중과 안영의 생애 서술은 철저히 무시되고, 그들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두 일화만 소개한다.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처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은 후반부에 이름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지금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가을 사마천의《사기열전》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