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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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한관우 편집국장
  • 승인 2009.10.1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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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서울신문 논설위원, 옛것을 복원하다
농촌에는 가을이 되면 울타리마다 팔뚝만한 수세미오이가 달렸다. 멋없이 힘겹게 매달려 있는 수세미지만 용도와 효능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수세미오이가 사라진 건 싸리 울타리나 토담을 시멘트 담으로 바꾼 뒤일 거라고 눈치 빠른 저자 이호준(사진)은 짐작했을 것이다.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고, 공부하면서 보고, 느꼈던 저자의 경험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만 생활한 충청도 촌놈이라는 순수가 낳은 한국적 미학의 단면인 것이다. 저자의 성격과 습관이 되다시피 한 치밀하고 부지런한 생활이 전통문화의 원형을 사진과 글로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호준은 현장에서 찾아낸 사라져가는 한국의 멋, 생활 속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구석구석 찾아 나선 여행과 답사의 기록을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다할미디어 발행)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의 저자 이호준은 홍성중과 홍성고(32회)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일간지 신춘문예에 도전하다가 신문기자가 됐다. 자칭 아마추어 사진작가라지만 수준급이다. 서울신문사 기자와 뉴미디어국장을 거쳐 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 겸 비상임 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 땅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있다. '사강'이라는 필명으로 온․오프라인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블로그 (http://sagang.blog.seoul.co.kr)에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을 연재하고 있다. 이 글을 묶어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그때가 더 행복했네>란 제목으로 2008년에 책으로 출간했다. 급변하는 현대문명 속에서 홀연히 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유․무형의 전통문화 속에서 아름다움과 향수를 발견해가는 자취를 기록했다. 사라져가는 옛스러운 풍경들과 문명의 발달로 자취를 감춘 일상생활 속의 사물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이 책은 전통과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깨워 주면서 '올해의 우수교양도서'와 '올해의 청소년도서' 등에 선정됐다.
 
이번에 출간한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2―떠나가는 것은 그리움을 남기네>에서는 휴일이면 여전히 카메라 가방 하나 둘러메고 방방곡곡을 누빈다는 저자가 1권에 담지 못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농촌풍경과 농업문화의 자취, 그리고 전통문화 기술을 보유한 마지막 장인들, 그리고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0~70년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물건들에 얽힌 정감어린 이야기를 생생한 사진과 함께 전하고 있다.
 
품앗이 새참의 정겨움, 농부의 땀이 실이 되고 옷이 되는 삼농사, 모시길쌈, 너와집, 상엿집 등 농촌, 고향의 풍경과 함께 도시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모습들도 하나하나 담았다. 600년 민초들과 함께해온 골목 피맛골, 월급봉투와 장발단속, 떠돌이 약장수와 아이스케키, 엿장수, 성냥공장 등 1960~70년대 도시민들과 근대화를 함께해온 소리와 맛과 기억을 끄집어내 보여준다. 생활의 한편에서는 무엇인가가 늘 사라지고 있다. 저자의 연작은 지난날의 기록이지만 또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마솥은 생필품 1호였다. 농촌의 하루는 가마솥과 함께 시작됐다. 겨울엔 쇠죽부터 끓였다. 소는 겨우내 잘 먹어놔야 농사철에 힘을 쓴다. 날이 밝기도 전에 가마솥에 겨와 콩깍지, 썬 짚 등 쇠죽거리를 넣고 장작을 지폈다. 쇠죽이 끓기 시작하면 구수한 냄새가 아침을 가득 채웠다. 그때쯤 되면 부엌의 작은 가마솥에서도 밥이 푸푸 끓어올랐다. 뜸을 들이기 위해 불을 조절하면서 작은 종지에 달걀을 풀어 솥뚜껑을 열고 밀어 넣었다. 아궁이에 감자나 고구마를 묻어놓고 기다리던 시간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솥뚜껑에 김치전이라도 부치는 날이면 뜨거운 전 한 장 받아들고 후후 불어가며 입에 구겨 넣을 때의 그 감동이란 느껴본 사람만이 느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비단 풍경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디지털 인쇄에 밀려난 '활판인쇄'와, '모시길쌈' '삼베길쌈' '춘포길쌈' 등 아직 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대가들도 소개했다. 이들 대부분이 기술과 재능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찾아가는 저자의 마음은 숙연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으며, 그럴수록 이를 철저한 기록으로 남기고 전통문화의 흔적과 정신을 이어가는 작업에 더욱 의미를 두는 듯하다. 전통문화를 다루는 저자의 글과 사진은 한없이 정겹다. 저널리스트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안목으로 소재에 천착하며, 각 편마다 다른 주인공과 구성으로 재구성한 이야기 솜씨도 뛰어나다. 이 책은 나이 지긋한 독자들에게 친숙한 농경문화와, 산업화의 그늘진 혹은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에서 깊은 공감대를 자아낼 것이다. 신세대들에게는 사라져가는 것들에서 다시 한 번 변화하는 농촌 등 한국적 아름다움을 환기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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