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 대학 졸업시킨 게 값진 소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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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매 대학 졸업시킨 게 값진 소득이죠”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1.05.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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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희노애락을 떡과 함께 … 홍주골외갓집떡 안민희(60)


안민희씨는 홍성은 물론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서도 알아주는 떡을 18년째 만들고 있다. 그녀가 처음부터 떡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송월리 생활개선회장으로 선출돼 농업기술센터에서 개최하는 생활개선 실적발표회에 떡을 갖고 나갔다가 우연히 당시 강영희 계장으로부터 “떡장사 한번 해보실래요?”라는 제안을 받고 오늘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IMF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떡을 만들어 가계를 이끌어 나가야만 했다. 손사래를 치시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하시다가 겨우 말문을 열었다.

“제가 홍성여고 16회 졸업생이에요. 지금의 남편이 비교적 유복한 집안이었고 저도 별로 고생 않고 자랐는데 시아버님이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생각지도 않게 시골로 들어와 살게 됐어요. 그저 4남매 키우고 열심히 살았는데 IMF터지면서 남편이 벌여놓은 일들이 다 실패하게 됐어요. 그리고 남편도 몸이 아파 재기하는게 어려웠고 빚만 잔뜩 지게 됐지요. 그래서 오로지 떡 만드는 일에 열중했던 것 같아요”

3남 1녀, 4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다. 그게 재산이란다. 아들 둘은 조경 사업과 전기사업을 하고 나머지 한 아들은 회사에 다니며 딸은 인천에서 중학교 교사이다.

“부모 욕심이 다 그렇지요. 시골에서 살다보니 도시로 나가 자식들 원 없이 가르치고 싶었어요. 그게 제일 아쉬움으로 남아요”

그동안 고생한 얘기를 해달라니 슬쩍 웃어넘기려 한다.
“고생 많이 했지요. 새벽 5시 트럭에 떡을 싣고 서울 백화점에 가서 하루종일 떡을 팔고 서울역에서 막차를 타고 내려와야 했어요. 어떨 땐 시간이 촉박해 서울역 대합실 개구멍으로 들어가기도 했어요”

또 처음엔 동네 할머니들이랑 밤새 회관에서 쑥개떡을 만들었단다. 번듯한 공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몇몇이 모여 봄이 되면 여기저기 쑥을 뜯어 떡을 만들어 팔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샘이 났는지 자기네 밭에서 쑥을 뜯지 말라고 쑥밭에 똥바가지를 퍼붓기도 했다는 것이다.

안씨는 떡에 대한 자신감은 있지만 배울수록 어렵고 한편으로 재미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이 다들 너무 고마워요. 잊지 않고 찾아주시니 그분들 때문에 보람돼요. 바쁠 땐 밤도 새고 잠도 2~3시간밖에 못자지만 그저 옆을 쳐다 볼 새가 없었어요. 단지 앞만 보고 살았어요. 빚 갚고 애들 키우다보니 동네에서도 아이고 저 여자 아니었으면 집안이 어쨌겠냐는 소리를 하기도 해요”

이제 내년까지만 빚을 갚으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고 밝게 웃는다. 그러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자꾸 다른 꿈을 꾸게 되고 생각이 많아진다며 얘기한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젊은 사람들 취향에도 맞고 우리 고유의 떡도 널리 알릴 겸 떡까페를 하고 싶어요. 음료와 떡을 함께 파는 거지요. 커피랑 어울리는 떡도 만들고 우리 전통차랑 맞는 떡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떡을 홍보하고 싶어요. 이것저것 많은 구상을 하고 밤새 뒤척이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데 생각을 잘 정리해서 꼭 꿈을 이루고 싶어요”

안민희씨는 생활개선회 다른 회원들을 보면서 위안도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고부갈등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는 우리 어머님 안 계셨다면 이 일을 할 수조차 없었을 거예요. 저 대신 집안 살림을 온전히 맡아 주셨고 애들 뒷바라지도 하셨고 지금 연세가 많으셔도 매일 방앗간에 나와 뒷일을 봐주십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하는데 서로 좀 참고 살면 안되나 하는 생각을 해요. 서로 생각이 달라도 며느리들이 조금만 맞춰보려고 하면 어른들이 먼저 이해하고 받아주십니다”라며 고부갈등 해결방안을 넌지시 제시한다.

평생 희노애락을 떡과 함께 하며 모진 삶을 살아온 어머니. 그녀는 모진 삶을 미워도 해보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직 가슴 깊이 묻어둔 채 한 세상을 살아간다. 당신 한 몸의 수고로 자식들을 이만큼 장성케 하였고 사람들에게 맛있는 떡을 만들어 먹게 했다는 자부심도 있다.

신이 이 세상 모든 곳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가지는 순간 그 어떠한 것보다 큰 힘이 생기나 보다. 모든 어머니들이 다 훌륭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가슴 뭉클하게 하는 이름을 지닌 사람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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