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고 직장에 취직을 해서 연봉을 받고 단계별로 승진하는 게 내가 원하는 인생은 아니었어요”
지난달 30일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학생 개인에게 배부됐다. 입시요강과 일정에 맞춰 치열한 눈치작전과 정보싸움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를 일만 남았다.
조은겨레 군은 지난 2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스무살 청년으로,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과감히 진로를 바꾼 용기있는(?) 선택을 했다.
“저를 제외하고 친구들이 거의 대학 진학을 했어요, 대학을 진학한 학생에게 왜 대학을 갔느냐고 묻지는 않지만 어른들 대부분이 저를 보면 왜 대학에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좀 난감하더라구요. 소위 말하는 일류대를 진학해 과감히 졸업을 포기하고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하는 선배들도 있는데 저야 뭐 그리 주목받을 건 없는 것 같아요”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막연히 대학입시를 준비했던 조은겨레 군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름대로 고민을 계속 하면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해야 행복한지를 계속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고 3때 학교에서 진행하는 학부모와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학부모진로지도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강좌에서 ‘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하자센터 소속의 사회적기업 ‘노리단’에서 일하는 분이 오셔서 설명을 하는데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것이다’란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지원이 가능했고, 공연기획을 하고 싶었던 차에 현장에서 직접 배우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 취업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중학교 때 목회를 하시는 아버지의 권유로 풀무학교를 알게 됐고, 주변에 풀무학교를 다니던 동네 누나를 통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게 되면서 강화도에서부터 홍동으로까지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됐다.
“처음 풀무학교에 들어가서는 혼자 키워왔던 학교에 대한 환상이 깨져 실망도 컸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풀무에서 보낸 지난 3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들로 기억될 것 같은 확신이 들어요.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배웠고 그 안에서 소통과 삶을 깨닫게 되어 너무 소중한 경험으로 자리할 것 같아요”
주변 어른들은 대학을 진학해 좀 더 전문적인 것을 배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충고를 했지만 조 군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는 용기를 내었다.
“당장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고 싶었어요. 만약 나중에 대학을 가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 얼마든지 그때 대학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심 아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해 자랑도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버는 직장에 취직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엄마의 심정을 옆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아들의 선택을 믿고 묵묵히 지원해주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는 스무살 청년의 의젓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조 군이 취업을 하려고 했던 하자센터 ‘노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갑자기 정부지원금이 삭감되면서 인력충원 계획이 축소돼 채용 계획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조 군은 다음 채용 계획이 공지될 때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기로 결심하고 연관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2011 하이 서울페스티벌과 홍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공연 기획부터 무대, 소품, 조명 등 많은 것을 직접 배웠다. 현재는 예산의 내포생태교육연구소에 자리를 잡아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 교구를 만들고 있다.
졸업 뒤 한 해가 지났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 불안하거나 사회의 시선이 두려운 적은 없냐고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고졸자로 산다는 게 부담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 저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그 사람들의 가치관이 낮은 것이지 제가 문제라고는 여기지 않아요. 그래서 별로 불안이나 두려움은 없어요.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게 분명하고 그것에 대한 목표가 있는 사람들은 불안이나 두려움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조 군은 그 말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지, 피하고 싶은 것을 즐길 수는 없지 않을까요? 즐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아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왜 굳이 피하지 않고 억지로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자신의 소신을 또렷이 밝혔다.
얼마 전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란 책을 읽으며 저자의 통찰력에 대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BBK나 삼성의 내막을 쉽게 잘 풀어줘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농민운동·생명평화운동을 하시는 아버지께서 얼마 전 국제포럼 때문에 잠시 인도네시아에 다녀오셨는데 그 사이에 한미FTA가 체결되어 너무 속상해 하시고 안타까워 하셨어요. 저는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세상인데 이것저것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하고 싶어요”
조 군의 목표는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마을에는 작은도서관도 짓고 공연과 놀이, 교육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중심이 되도록 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풀무학교가 있는 홍동을 보면서 그러한 꿈을 키웠던 것이리라.
아직은 무엇 하나 명확한 것은 없지만 조 군의 용기있는 선택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그 날까지 힘차게 나갈 수 있도록 뜨거운 격려를 아끼지 않고 뜨거운 격려를 해주고 싶었으며, 조금은 어색하고 부끄러운 웃음을 간직한 해맑은 청년의 풋풋한 미소를 가슴에 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