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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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39
  • 한지윤
  • 승인 2020.04.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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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왕의 말을 들어보면 여인들을 가까이 해 본 그런왕은 아니었다. 처녀의 몸으로 왕자를 대했을 때 그 여자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그런 광경을 보았더라면 지금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왕 한 사람만을 보고 한 사람을 위해서 먼 대방국에서 백제로 온 대방국의 왕녀인 왕비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었다.
“대왕 마마.”
이번엔 왕비가 조용히 왕을 불렀다. 이 말 한마디를 꺼내니 어느덧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사그러져 들었다. 그것이 한녀의 야무진 성격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들어 왕을 쳐다보는 왕비의 얼굴을 참으로 아름다웠다.
“비.”
책계왕은 비의 부름에 대답은 하지 않고 왕비의 빼어난 미모와 아름다움에 활홀감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네.”
“비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비는 백제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말이오?”
“백제사람이 되고자 대왕마마를 찾아 평생 동안을 뫼시려고 온 몸이 아니옵니까?”
백제가 싫으면 어떻게 백제의 왕을 모시는 왕비가 되어 백제땅에 왔겠느냐는 야무진 대답이었다.
책계왕은 그 소리를 듣고는 매우 만족하는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들리던 말대로 역시 영리하고 총명한 여자로구먼.’
혼자서 속으로 생각하며 왕은 이 총명한 왕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면 과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오?”
“대왕마마, 마마께서 안계시오면 이 소녀 무엇하러 백제땅까지 왔겠나이까.”

왕은 대단히 흡족해 했다.
‘그래, 백제가 좋아서 아니 과인이 좋아서 온 몸이 분명할진대 남편이 된 나의 마음이 참으로 좋구려. 더구나 뛰어난 미모와 아름다움, 그리고 한마디 한마디가 뛰어난 총명이 보일진대 대방국의 왕녀로서 백제왕이 좋아서 왔다는데 참으로 마음이 흡족하구려. 참으로 기쁘다. 기뻐!
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왕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왕비를 불렀다.
“비! 이렇게 총명한 아내의 내조가 있을진대, 내 꼭 부왕의 뜻을 받아 백제를 부강케 하리라.”
왕비도 흐뭇한 마음으로 대답했다.
“네, 알았사옵니다. 꼭 그렇게 하시와요!”
“헌데 백제의 왕비됨을 싫지 않다 하는 비께서 어찌 과인 보기를 꺼려하는 거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왕비를 마땅치 않게 여겨서 묻는 말이 아니라, 비의 말을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짐짓 물어 보는 말이었다.
왕비의 얼굴에 물들었던 붉은 빛이 사라지며, 왕비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대왕마마께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
“무슨 뜻이오?”
“대왕마마 어이 범부와 같이 아녀자에게 짖궂으시나이까?”
“과인이 범부와 같이 짖궂다니?”
“대왕마마 진정 여자의 마음을 모르시와 물으시나이까?”
“세상에서 과인을 제일 아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분이 과인의 어머니거늘, 과인이 어찌 여인의 마음을 모르리오.”
왕의 말이 이러할진대 책계왕은 정녕 여자와 가까이 해봄이 없는 것이라 왕비는 여겨졌다.
왕비의 얼굴에 다시 홍조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부끄러움만 타고 있을 수 없는 지금의 왕비였다.
“대왕마마 하문이오라, 한 말씀으로 소녀의 마음 아뢰오리이다.”
“비는 이미 백제의 왕비가 되었거늘, 무슨 말이든 허물치 않으리니 말해보오.”
“소녀 대왕마마를 바로 뫼시지 못하옴은 여인인 까닭 이로소이다.”
“여자인 까닭?”
“소녀만이 아니라, 어느 여자건 혼례를 치른 뒤엔, 누구나 얼굴을 들지 못하는 법이외다. 수치심이랄까, 부끄러움 때문이옵니다.”
“하하하, 여인의 수치심과 부끄러움 때문이라.”
“대왕마마 진정 범부보다 더 짖궂으시오이다.”
왕비 보과부인의 얼굴은 또다시 붉어지며, 고개가 수그러진다.
왕비 보과부인의 하는 양이 더욱 마음에 드는 양 책계왕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왕비 보과 부인의 손을 잡았다.
솜털같이 보드라운 손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에그머니 저기 보옵니다.”
왕비는 소스라쳐 놀라며, 왕에게 잡힌 손을 왕의 손에서 빼내려고 했다.
“보다니, 이곳은 과인의 침소요, 뉘 감히 과인의 침소를 엿보리오.”
“저기 더 불이 보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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