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용봉 장군 전설, 홍성의 진산 ‘백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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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용봉 장군 전설, 홍성의 진산 ‘백월산’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07.3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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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19)

백월산(白月山)은 홍성읍 서쪽에 있는 해발 394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옛 고을에는 꼭 진산(鎭山)이 있었다. 지역의 안녕을 기원하는 산이다. 관아가 등을 지고 있는 진산에는 흔히 외침을 대비하는 산성이 있었고, 고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당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사당에 모셔진 산신 중에는 실제 인물인 경우가 있다. 조선 초기까지는 흔히 고을의 안위를 좌우했던 인물을 성황신으로 모셨고, 그 이후에는 다만 성황신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했을 뿐이었다. 흔히 그들에 대한 제향을 지내는 시기에 놀이판도 벌어졌으니, 지금으로 치면 지역축제가 열렸던 셈이다.

홍성사람들은 백월산을 홍성의 진산으로 여기고 있으며, 경관이 아름답고 산행하기에도 좋은 산으로 꼽는다. 원래 백월산은 황해도 구월산, 전남 영암의 월출산과 함께 우리나라 세 월산(三 月山)의 하나로 꼽혀왔다. 홍성의 백월산은 코끼리바위, 바위턱 조망대 등 산비탈 곳곳에 기암괴봉이 있고, 바위등성이도 있으며, 서어나무 등 특히 숲이 울창하다. 또 절과 이름난 약수터가 있어 다른 산들과 비슷하면서도 백월산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색다른 점도 많다. 산머리 곳곳에 꽃밭과 정자, 제단, 사당 등이 있으며, 50미터가 넘는 명물 하늘사다리, 절골의 바위협곡을 건너는 구름다리 등 산행시설이 잘 돼있다. 봄철이면 백월산 머리는 갖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화사하다.

백월산은 충절의 산이다. 산머리 거대한 바위를 등지고 벼랑 위에 홍주청난사중수비와 청난사가 있다. 청난사는 선조29년 7월 임진왜란 중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홍가신 등 다섯 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산머리에 충신의 사당이 있는 곳은 여기 백월산 뿐이다.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 아침 5시에 이곳에서 산신제를 올린다. 백월산은 경술국치(한일합방)를 전후해 많은 홍주의병들이 이 산으로 들어와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 백월산 곳곳에는 민속신앙의 기도터가 많다. 이곳에 있는 청난사도 민속신앙의 당집을 겸하고 있다. 사시사철 제물이 차려져 있고 자주 굿판이 벌어지곤 한다. 당집 앞에는 지름 30㎝ 정도의 둥근 구멍이 파져 있는데 옛날에는 이 구멍에 소피를 받아 단군제의 제물로 썼다고 전한다.

건너편 구릉 같은 봉우리에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천제단이 있다. 해마다 홍성군에서 영신 고천대제(迎新 告天大祭)와 단군제를 여는데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국의 산악회에서 산신제 제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백월산도 곳곳에 기암괴석들이다. 하늘사다리로 불리는 가파른 나무계단 길을 내려서면 바위 전망대다. 여기에서 바라보는 지척의 용봉산과 홍성읍의 조망이 그림 같다. 바로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용화사가 있는 미력골재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고, 우측이 산혜암으로 가는 길이다. 산혜암은 백월산의 동사면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홍성의 옛 이름은 홍주(洪州)다. 1914년 일제에 의해 빼앗긴 이름을 지금까지 되찾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옛 목사고을이다. 조선조에는 홍주목(洪州牧)으로 목사(牧使)가 주재하며 14개 현(縣)을 다스렸고, 고종 32년(1895)에는 부(府)로 승격돼 부사가 경기도 평택에서 서천까지 22개 군현을 관할하기도 했다. 지금의 도에 해당하는 홍주목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홍주성과 안회당(홍주목 동헌), 홍주아문, 조양문(홍주성 동문), 여하정 등이 지금도 남아있다.

백월산의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월산(月山)으로 돼있다. ‘본주 서쪽 3리 지점에 있는 진산’이라 적고 있다. 그러나 1750년에 만들어진 광여지도에는 백월산으로 나타난다. 그 뒤에 나온 대동지지에도 ‘월산(月山)’이라 돼 있다. 하지만 국립지리원의 지도 등 공식 지도에 ‘일월산(日月山)’으로 돼 있는 것은 옛 지도에 백월산의 흰백(白)자에서 점 하나를 빼고 날일(日)자로 잘못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을의 이름도 일제에 의해 빼앗긴 마당에 진산의 이름까지 잘못 보아서야…. ‘백월산(白月山)’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백월산은 용봉산과 높이가 비슷하다. 기암이 많은 점도 비슷한데 기암괴석과 바위봉은 용봉산이 훨씬 더 많다. 거기에는 나름의 전설이 전해진다. 아주 옛날 백월산 장군과 용봉산 장군이 아름다운 마을에 살고 있는 예쁜 여인 ‘소향’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산에는 거대한 돌들이 있었는데 투석전을 벌인 끝에 백월산 장군이 이겼다고 전한다. 그때 백월산 장군이 던진 돌이 훨씬 더 많이 용봉산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용봉산에는 거대한 바위와 기암들이 쌓여 작은 금강산처럼 절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용봉산 장군이 던진 돌은 상대적으로 적어 백월산에는 용봉산에 비해 기암이 적다는 전설이다. 그래서 소향도 백월산 장군에게 시집을 갔는데 이런 연유에서인지 지금도 홍성읍에는 ‘소향리’라는 마을이 있으며, 백월산 쪽으로 더 가까이 치우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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