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빈집·폐건물·창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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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빈집·폐건물·창고,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0.08.3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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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빈집·폐건물, 공유경제 가치를 담다 〈5〉
제주 영평동에 위치한 중선농원의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사진 왼쪽)’와‘갤러리2(가운데)’ , 인문예술도서관 ‘청신재(사진 오른쪽)’.

제주도에 빈집이 3만 채, 전체 주택의 약 10% 정도가 빈집
농촌빈집, 폐건물, 창고, 폐교 등 활용하려는 움직임 일어나
작은 마을들, 리(里)단위 마을에 문화예술 공간 하나씩 생겨
근대문화유산의 가치 재사용,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데 의의

 

농산어촌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빈집이 늘고 있다. 소유주가 외지인이어서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빈집이 리모델링을 거쳐 귀농·귀촌인의 새로운 삶터가 되기도 하고 폐교가 마을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농촌지역에 빈집이 많은 배경 중 하나는 상속 등으로 인해 소유주 대부분이 외지인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기도 한다. 양도받은 주택을 처분하면 추가적인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거나 공들여 지은 집을 선뜻 철거할 수 없어 빈 상태로 두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자신이 들어가 살고자 당장은 빈집으로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에 빈집이 3만 채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주도 전체 주택의 약 10% 정도는 빈집이라는 얘기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제주지역에 대한 빈집 전수조사 결과 모두 862호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역별로는 제주시 548호와 서귀포시 314호이며, 용도별로는 단독주택 747호와 공동주택 115호이다. 결과적으로 제주지역에 1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모두 862호인 것으로 조사됐다는 표면적인 통계 수치다.

제주도는 이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올해 안에 빈집 정비를 위한 시행방법과 소요사업비, 재원조달 계획 등을 망라한 정비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정비계획은 제주연구원에 의뢰해 수립하거나 용역을 의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공유경제 시대, 문화예술 공간 등 변신
새로운 소비형태로 주목받는 공유경제 시대에 발맞춰 농촌 빈집이나 폐건물, 창고, 폐교 등을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제주도에는 문화예술가들의 발길이 머문 곳은 상당수가 빈집이나 폐건물, 폐창고, 폐교 등이다. 제주도에는 빈집이나 폐건물, 폐교 등을 활용, 지금의 작은 마을들,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리(里)단위 마을에 문화예술 공간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다.

제주 서귀포의 성산에는 옛 국가기간 통신시설로 오랜 시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벙커가 있었다. 이곳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해저 광케이블 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해 설치된 시설이었다.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인 2975.2㎡(900평) 면적의 대형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오름 안에 건설해 흙과 나무로 덮어 산자락처럼 보이도록 위장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 출입을 통제하던 구역이었다. 이렇게 방어의 목적으로 설계된 벙커의 특성은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공간으로 최적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단층 건물로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내부 높이만도 5.5m에 달하며 내부에는 넓이 1m²의 기둥 27개가 나란히 있어 공간의 깊이감을 한층 살려주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또한 자연 공기 순환 방식을 이용해 연중 16℃의 쾌적한 온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고 내부에 벌레나 해충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내부 공간은 방음효과가 완벽하며, 미로와 같은 진입은 관람객들에게 적절히 몰입을 높여가는 과정을 제공한다. 지난 2017년 찾아낸 제주의 이 오래된 벙커는 일부 철거를 통한 내부 공사를 거쳐 콘텐츠 제작과 사업을 위해 지난 2018년에 ‘빛의 벙커’로 개관했다.

서귀포시 이중섭거리에 있는 옛 서귀포극장은 1963년 당시 서귀읍 최초의 극장으로 개관한 곳이다. 영화 상영, 연극·음악 공연 등으로 지역주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줬던 이곳은 ‘(구)서귀포관광극장(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건물 원형을 보전한 채 지붕을 걷어내 별빛을 보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지역주민협의회가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최근 제주에는 전국 문화예술인들이 터를 잡으면서 문화이주도시로 급부상하고 있다. 제주 지역예술인들은 마을 주민들과 힘을 모아 마을역사를 기록하거나 침체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는 비어있던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빈집 프로젝트 지원을 통해 탄생한 곳들이다. 제주로 삶의 터를 옮긴 귀향자나 이민자, 제주에 살면서 문화의 주역으로 나선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이 추구해 오던 자생적인 문화운동과 결합한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으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제주시 영평길 269에 자리한 ‘중선농장’의 감귤창고가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제주출신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의 부친이 한평생 귤 농사를 짓던 농장이다. 그의 가족들은 세월이 쌓인 2300여 평의 드넓은 농장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감귤창고를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감귤농장의 창고와 농가는 갤러리 중심의 새로운 문화복합 공간으로 바꿨다. 가장 큰 감귤창고에는 비영리 전시장 ‘갤러리2’가 들어섰고, 작은 창고는 카페로, 농기구가 가득했던 부속 건물들은 인문예술도서관인 ‘청신재’(晴新齋)로, 농가로 쓰였던 건물은 게스트하우스 ‘태려장’(太麗莊)으로 탈바꿈했다.

서귀포 남원읍 하례리에 있는 ‘꿈꾸는 고물상’도 제주문예재단의 빈집 프로젝트로 재탄생된 문화예술 공간이다. 세 쌍의 예술가 부부로 이뤄진 제주 이민자들이 방치됐던 감귤창고를 폐자재와 버려진 고물들을 재활용해 꾸몄다. 2층 집을 개조해 만든 창작공간 ‘고물창고’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과 문화 생산자들이 창작을 하는 공간이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창작의 결과물들은 또 다른 공간인 ‘보물창고’에서 매월 한차례 ‘고물데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다. ‘꿈꾸는 고물상’은 공연, 전시, 영화감상, 음악나누기, 파티, 세미나까지 가능한 ‘마을을 향해 열려있는 소통 공간’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문화곳간 ‘시선’과 삼달곳간 ‘쉼’, ‘차롱’ 역시 빈집 프로젝트 지원사업으로, 지난 2011년 문화그룹 ‘아트창고’가 감귤창고를 활용해 만들어낸 대안 예술 공간이다.

앤트러사이트 내부.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 내부.

제주시 한림읍에는 ‘감저공장’을 개조해 만든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가 있다. ‘감저’는 고구마를 뜻하는 제주어이고, 감저공장은 전분공장을 의미한다. 지금은 잊힌 기억이지만 1960~80년대까지는 제주를 대표하는 농산물이 감귤이 아니라 고구마였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 전역에는 고구마 전분공장과 주정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카페 ‘앤트러 사이트 제주’는 1990년대까지 전분공장으로 쓰이다 방치된 건물을 재활용해 카페로 만들었다. 

서귀포 가시리 창작지원센터와 제주시 ‘문화공간 양’ 역시 제주문예재단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지원사업 공간이다. ‘가시리 창작지원센터’는 작가와 마을, 마을과 제주도가 함께하는 공공문화예술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작가스튜디오와 숙소 4동, 공동부엌과 로비공간 1동, 목공방 1개동이 마을 공동소유로 돼 있다고 한다. ‘문화공간 양(상대를 부르는 제주방언에서 이름을 따온)’은 함께하는 예술제작소다. 기존 가옥을 고쳐서 전시·작업·거주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시공간의 경우 1950년에 지어져 낮고 좁은 제주 전통가옥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독특한 분위기다.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숨겨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빈집·폐건물·폐창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
지역에 방치된 폐건물, 폐창고 등 오래된 건물들은 그 자체로 근대유산의 가치를 가지며 이를 재사용함으로써 유산을 보존해 다음 세대로 전해주는데 의의가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우도 매년 공·폐가 정비사업에 나서고 있지만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더구나 공·폐가들은 도내 도심지 주택가와 농어촌까지 곳곳에 산재해 있어 범인들의 범행과 은신장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각종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방치된 빈집을 중심으로 폐건물, 폐창고와 폐교 등을 새로 고쳐 삶터를 정한 귀농·귀촌인을 위한 터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에 140만 가구 이상의 빈집이 있고, 이중 약 40%가 주로 읍·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버려진 건물을 계속 방치하게 되면 지역 경관을 훼손하고, 주변지역을 우범화 시키게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농어촌에 늘어나는 빈집을 중심으로 폐건물, 폐창고와 폐교 등의 인프라 활용도를 높이고,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서귀포 종달리의 빈집에 만든 서점 ‘책약방’.

최근 제주엔 마을마다 책을 테마로 한 서점과 북카페 등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중에서 빈집과 폐건물, 폐창고를 그대로 살려 인테리어한 책방과 북카페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처음에는 주로 주거 용도로 변모를 시도하더니, 요즘에는 카페, 서점, 갤러리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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