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전주,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후백제 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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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 전주,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후백제 왕도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0.09.1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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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를 담은 땅,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묻다 〈3〉
전주시 승암산에서 바라본 천년고도 전주 전경.
전주시 승암산에서 바라본 천년고도 전주 전경.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 태조 이성계의 본관이며, 조선왕조의 발원지
전주는 조선 최초 시장이 열린 곳, 한양·평양 다음 세 번째 큰 도시
1300여년 역사와 찬란한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글로벌문화도시 도약
전주의 정체성이 담긴 구도심 100만평 100가지 색깔의 문화심장터로

 

전주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후백제 왕도인 천년고도다. 올해는 견훤 왕이 전주(완산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의 건국을 만천하에 천명한지 1120주년이 된다. 

전주는 백제 때 완산(完山)이라 불렸고,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고 나서 8년 뒤인 900년에 입성해 도읍을 삼았던 고도(古都)이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는 전라관찰사가 집무하던 전라감영(全羅監營)이 있었던 곳이다.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본관이며, 조선왕조의 발원지로 경기전(慶基殿)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주 풍남문(豐南門)은 전주부성(全州府城) 4대문 중의 남문이다. 웅장 단아(端雅)한 모습의 성문은 그 축조수법이 조선 후기의 복잡한 조각기법을 보이고 있고, 상당한 기교와 재치가 보이는 건축물로 꼽힌다. 

전주는 후백제 왕도로 36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반면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해서 세운 진나라 역사가 15년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수립역사도 75년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견훤 왕이 전주에 후백제를 세우며 ‘나는 감히 도읍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백제의 사무친 숙분을 풀러 온 것뿐이다.’라고 했던 말을 되새겨볼 일이다. 나라 이름을 떳떳하게 백제의 맥을 잇는다는 뜻으로 ‘백제’라고 선포했던 연유다. 어찌 보면 후백제란 말은 후세 역사가들이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서 지었던 이름일 뿐이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해 당나라를 끌어들여 당나라의 연호를 썼지만 후백제만은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 전주는 조선 최초로 시장이 열린 곳
조선시대 전주는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전주이씨의 고향으로, 상징적인 위상을 갖고 있었다. 당시 전주는 고려시대 전주목성의 규모를 유지해 전주부성으로 불렸다. 전주부성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시는 어용전(御容殿)·경기전(慶基殿)을 조성하며 확장했고, 1734년(영조 10)에 개축하며 지속적으로 확장됐다. 전주부성에는 광역권의 전라도와 전주의 행정을 담당하는 일련의 지방행정 시설들이 밀집해 조성됐다. 한 도시 안에 ‘왕실’과 ‘지방행정 거점’이라는 서로 상이한 상징과 행정 프로그램들이 자리하고 있어 조선시대 전주는 오늘날까지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전주는 조선 최초로 시장이 열린 곳이다. 한반도에 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의 1470년 전후라고 한다. 이후 한반도에는 다수의 지방 장시들이 형성됐다. 1809년(순조 9년)을 전후로는 1061개의 시장이 열렸다고 전한다. 이때까지 조선의 시장은 군중의 반란이 모의되는 장소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앙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았다. 이러한 시장 활동의 규제는 1473년(성종 4) 신숙주가 쓴 ‘성종실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후 중종은 시장 활동을 전국적으로 금지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농민의 생존을 위한 자연 발생적 장시를 묵인했다. 지형적 특성상 전주는 동쪽의 노령산맥으로부터 오는 산의 물자들과 서쪽의 호남평야로부터의 물자들이 모일 수 있었기에 큰 시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 5일장과 10일장의 정기시장이 열렸고, 정기시장과 함께 부내대장(府內大場)으로 불렸던 상설시장과 정해진 기간에 열리던 특별시장인 악령시가 열렸다. 이 시장들은 결국 전주의 성장과 위상을 높였다. ‘호구총수(1789년(정조 13)’에 의하면 전주는 1789년을 전후로 2만 947호가 있어 한양, 평양에 세 번째 큰 도시였으며, 인구는 7만2505명으로 한양, 평양, 의주, 충주에 이어 다섯 번째였다. 

한편 전주는 1700년대부터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과 미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의 활동거점이 됐다. 당시 전라감영의 전라관찰사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천주교인들을 통제했으며, 옛 전라북도청 2청사를 감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1791년(정조 15)부터 시작된 조선의 가톨릭 박해에 따라 전주의 전동성당(殿洞聖堂), 초록바위, 치산성지, 숲정이 부지들은 순교자들의 박해와 참형의 성지가 됐다. 호남의 첫 사도인 유항검(아우구스티노), 윤지헌(프란치스코) 등도 역시 이곳에서 순교했다.
 

■ 전주 한옥마을 1900년대부터 형성돼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전주 한옥마을은 전주향교와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19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당시 조성된 마을은 기존 농촌에 조성된 일반적인 전통한옥마을이 아닌, 도시의 격자형 슈퍼블록 내에 좁은 필지와 골목을 두고 조성된 도시형 한옥마을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전주는 지난 1976년 ‘전주이조문화권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1977년 전라북도청은 이를 실현화하기 위해 ‘한옥보존지구’를 지정하며 신축 건물로 한옥만을 허가하는 강력한 행정명령(전라북도 고시 제73호)을 발표했다. 이러한 노력은 전주의 한옥을 지역의 역사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모티브에서 비롯됐다. 당시 전주에는 약 800여 채의 도시한옥들이 독특한 도시경관을 형성하며 인접한 풍남문~경기전, 전동성당~오목대~향교를 묶어 역사도시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었다.

한편 전주만의 차별화된 전통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1000만 관광객이 찾는 글로벌 관광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사업이 아시아 문화심장터 프로젝트이다. 지난 2017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은 전주의 원도심 100만평(약 330만㎡)에 조성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전망이다. 문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시민행복지수 향상을 목표로 △아시아 TOP3 문화도시 도약 △1000만 글로벌 관광도시 조성 △시민 누구나 문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문화평생도시 조성 △세계 속의 문화체육도시 도약 △시민이 행복한 미래농업경제 육성 등 5대 전략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렇듯 13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전주의 구도심을 역사적 정체성과 전통문화 자산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한 작업이 구도심 아시아 문화심장터 100만평 프로젝트다. 전주의 구도심 지역에 있는 한옥마을, 전라감영 등 전통 문화자산과 후백제 왕도를 거쳐 조선왕조의 발상지로서의 전주, 동학농민혁명으로서의 전주, 천주교 성지로서의 전주 등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역사와 문화, 삶의 이야기를 간직한 전주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게 재생하는 구도심 재창조 프로젝트다.

전주는 민선 6기 이후 도시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집중했다.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전주의 정체성은 자동차보다는 사람, 콘크리트보다는 생태, 개발보다는 재생 그리고 격조 높은 문화다. 특히 민선 6기에 지켜온 도시정체성이 올곧이 이어진 민선 7기에도, 전주는 도시 곳곳에 혁신이라는 이름의 꽃을 피우고 있다. 전주가 지켜온 정체성 ‘전주다움’은 도시의 경쟁력이 돼 전주를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도시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주가 글로벌 문화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것은 강점인 역사문화를 토대로 관광경제를 키워 시민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발전을 이뤄내겠다는 의미이며 복안이다. 이와 함께 전주의 문화를 대한민국의 미래성장동력으로 만들어 국가균형발전과 문화강국을 이뤄내는 리더도시가 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전주는 이미 조선왕조의 본향이자 후백제 역사문화가 잠들어 있는 도시, 동학농민혁명 중심지로 1000년이 넘는 뿌리 깊은 역사와 착실히 발전시켜온 찬란한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착실히 닦아오고 있다. 

전주는 국내 229개 지방자치단체 중 지역주민들의 전반적인 문화 수준을 반영한 지역문화지수가 가장 높은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또 시민과 지역예술가들과 함께 다른 도시들과는 차별화된 전주만의 문화를 창조하면서 문화콘텐츠를 꾸준히 확충해 나가고 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세계인이 찾는 관광의 저력을 모두 가진 전주의 경쟁상대는 이제 대한민국에는 없다”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 전주의 정체성이 잘 담긴 구도심 100만평을 100가지 색깔을 간직한 아시아의 문화심장터로 만들고, 전주를 파리와 로마 같은 글로벌 문화관광도시로 만드는 꿈을 일궈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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