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마을신문 ‘판암골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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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마을신문 ‘판암골소식’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0.09.1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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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미디어 마을신문, 동네를 바꾼다 〈6〉
올해 5월 29일자 복간 제145호 판암골소식 지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마을미디어 공동체를 묶어내
‘판암골소식’ 창간 15년, 복간 제145호 발행 매월 4면, 5000부 배포해
 주민기자로 구성된 마을신문주민기자단, 월례회의 통해 모든 것 결정
 마을신문 주민기자 활동 마을의 변화·자신의 삶 자체도 변화 가져와

 

지역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미디어가 바로 마을미디어다. 마을미디어는 작은 소식지부터 신문, 잡지와 같은 활자 매체도 있고, 공동체라디오와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렇게 마을미디어가 만들어지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본능에 가까운 소통욕구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동체에 미디어는 꼭 필요한 요소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공동의 문제를 논의하는 공간인 언론은 공공대화를 구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마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론의 장 기능을 하는 언론이 있다면 공동체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고, 결속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동체를 풍성하게 하는 언론의 역할을 말하기에 앞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국사회는 먹고사는 문제에 갇혀 있는 형국이라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마을미디어는 공동체를 묶어내고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지만 안정적 수익구조가 없으면 지속적으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보통 마을신문들은 광고료로 제작비를 충당하고 인건비 없이 마을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기사작성, 편집, 배포를 맡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주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당면과제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마을미디어로 공동체 내에서 소통을 돕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다. 
 

마을신문 판암골소식의 신문배포대.

■ ‘판암골소식’ 창간 15년, 5000부 배포
대전시 동구 판암동은 영구임대아파트가 밀집해 있으며 독거노인,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많이 사는 곳이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주민들은 하나 둘 동네를 떠나 마을 자체가 슬럼화 되기 시작한 게 15년을 훌쩍 넘고 있다. 

지난 2005년에 정부와 자치단체에서 판암동을 도시 슬럼화 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게다가 동네에 있던 목욕탕, 슈퍼마켓, 은행 출장소마저도 문을 닫고 떠나기 시작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건 아이들 교육 문제와 주민들 화합문제였다.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들고 어려운 사람들만 모여 사는 동네라는 이미지로 굳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 판암동 주민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판암주공아파트 4단지 안에 있는 생명종합복지관에서도 마을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했다. 복지관을 찾는 대상자들을 도와주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주민 통합을 위해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 축제를 여는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마을 주민들과 복지관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제대로 마을 실상을 알고 있지 못하고 소통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을 문제를 알려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았다. 처음엔 아파트 내에서 방송을 해볼까도 했는데, 직접 주민들에게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대다수 마을 주민들은 마을신문이 있으면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지만 바로 신문을 만들지는 못했다. 2005년 6월에 처음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자교육을 시작했고, 신문이 나오기까지는 6개월이 더 걸렸다. 2005년 12월에 판암동 마을신문 ‘판암골소식’이 복간됐다. 마을주민들이 복간이라고 표기한 데는 1998년도에 발행한 마을신문 ‘돌샘마을’을 이어간다는 뜻에서다. 

판암주공아파트 4단지에 있는 생명종합복지관과 일부 뜻있는 마을주민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주민을 화합시키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까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마을신문이다. 지역주민이 함께 만드는 마을신문 ‘판암골소식’이 창간 15년, 복간 145호를 맞았다.

지난 1998년 ‘돌샘마을’이라는 신문으로 시작했지만 발행의 어려움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2005년 12월 복간 1호가 나왔다. 2020년 5월 29일자로 복간 제145호를 발행하기까지  매월 4개면으로 신문을 제작해 5000부를 배포하고 있다. 


■ 철저하게 주민기자 중심으로 운영해
‘판암골소식’은 한 달에 한번 4면으로 발행, 5000부를 찍는다. ‘판암골소식’에는 동네의 훈훈한 소식, 이슈&이슈 등 다양한 기사가 실린다. 또 현장인터뷰를 통해 동네 이슈를 기사화한다. ‘판암골소식’은 동네 곳곳에 설치한 배포함을 통해 주민들을 찾아간다. 

‘판암골소식’을 만드는데 필요한 예산은 한 달에 50여만 원 안팎으로 복지관에서 세운 예산으로 만들기도 하고, 민간 재단 기금을 활용하기도 한다. 또 마을신문 우수사례로 선정돼 시와 구에서 예산을 지원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재정적 고민을 덜고 신문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주민기자들은 자원 활동, 봉사 개념으로 마을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복간 제145호 1면에는 ‘집콕 생활 어떻게 지내세요?’ 제하의 학부모 임영옥 씨와 이진희 씨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아이 있는 가정집에서 코로나19로 바뀐 일상생활은 어떤 일들이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등교를 못한 아이들의 집콕생활이 4개월 정도 되고 있는 요즘의 일상생활에 대해 학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기사다. ‘4단지 판암 라디오스타 뜬다’는 기사에서는 집콕 생활을 하는 주민들을 위해 ‘코로나19 바이러스 극복 응원 메시지’를 주제로 4단지 관리사무소에서 입주자에게 전한 라디오방송을 소개하고 있다. 이 방송을 들은 4단지 주민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안녕이라는 소리가 재미있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많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어 1면에는 ‘손 소독제 스프레이 만들어서 이웃과 나누어요’란 기사가 실렸고, 2면에는 ‘집에서 즐기는 우리가족 이야기’와 ‘판암2동 가로등 이야기’와 코로나19 극복 바리스타 이야기 ‘달고나커피 만들기에 도전한 10가정’이란 기사와 ‘긴급재난지원금을 알아보자’란 기사가 실렸다. 3면에는 ‘지역사회 공유공간 넘치는 교회 이야기’라는 제목의 공윤식 목사 부부 인터뷰를 실었고, ‘유끼꼬 기자의 한국생활일기’와 ‘김판진 기자의 에세이’가 실렸다. 4면에는 알뜰정보와 광고 등이 실렸다.

판암골소식에 ‘유끼꼬 기자의 한국생활일기’라는 연재 기사를 올해로 13년째 쓰고 있는 까사이 유끼꼬 기자는 2017년부터 편집장을 맡고 있다. 1997년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유끼꼬 기자는 한글을 읽고 쓰는데도 어려움이 컸지만 동료 기자와 복지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판암골소식’의 최고 기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생활 속에서 체험한 한국과 일본문화의 차이점을 재미있게 풀어낸 ‘유끼꼬 기자의 한국생활일기’는 판암골소식 인기코너로 등극했다고. 지난 2007년부터 ‘판암골소식’ 기자로만 13년째 일하고 있다.

유끼꼬 편집장은 “13년 동안 신문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던 힘은 변화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새로운 관계가 맺어지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고, 주민들이 움직이면 마을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언제부터인가 마을미디어는 주민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오랜 기간 연재하고 있는 한국생활일기를 읽고 감동받았다면서 손 편지를 써준 독자를 잊을 수 없다. 

한국과의 인연은 필연이었다. 몸이 아팠을 때 종이학 1000개를 접어 쾌유를 기원했던 남편의 사랑에 감동 받아 한국으로 시집왔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첫째와 둘째, 중학교를 다니는 막내를 키우고 있다. 미디어가 가져온 마을의 변화에도 감동했다”고 말했다.‘판암골소식’은 철저하게 주민기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마을신문이다. 까사이 유끼꼬 편집장, 한선영, 김판진, 이수일, 김태부, 김채림 편집위원과 주민기자로 구성된 마을신문주민기자단은 주민기자 월례회의를 한 달에 한 번 열고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한다. 

‘판암골소식’ 주민기자들은 마을신문을 통해 마을이 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은 마을신문 주민기자로 활동하면서 마을의 변화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 기획기사는 충청남도지역언론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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