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땅 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정체성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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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땅 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정체성 디자인’
  • 취재=한관우·김경미 기자
  • 승인 2020.10.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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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역사를 담은 땅,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묻다 〈7〉
천년고도 담양군 전경.

담양, 대나무로 유명한 만큼 죽녹원·소쇄원 등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조선시대 크게 발달한 가사문학의 산실, 인문학의 으뜸으로 꼽는 곳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소쇄옹 양산보 등 하향 후학 양성하던 공간
담양 지명 천년을 맞아 탄생한 문장, 역사 반추·지역의 정체성 함축

 

전라남도 담양은 오래전부터 대나무가 많이 자라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최근에는 도시 곳곳에 심어져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서 멋있는 가로수 길이 만들어졌다. 이를 보기위해 담양을 방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푸른 대나무가 무성한 죽녹원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인 소쇄원,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 삼지내마을까지 작은 부분 하나까지 자연환경과 인문학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한 만큼 대나무 숲인 죽녹원은 담양을 찾으면 필수코스다. 지난 2003년 5월 개장한 31만여㎡의 공간에 울창한 대나무 숲과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의 정자문화 등을 볼 수 있는 시가문화촌으로 조성돼 있다. 죽녹원에 들어서면 대숲 사이를 걸으면 운이 트인다 해서 ‘운수대통길’, 연인이 함께 걸으면 좋다는 ‘사랑이 변치 않는 길’, 깊은 생각에 빠지며 걸을 수 있는 ‘철학의 길’과 ‘사색의 길’, 담양의 선비문화를 새겨볼 수 있는 ‘선비의 길’ 등이 있다. 또 소쇄원에서는 이상적 왕도 정치를 펼쳐 보려다 좌절한 조선의 사림들이 하향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충의를 지키며 살던 곳,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가꾼 삶의 터를 돌아보는 일은 인생의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산실, 후학 양성 공간
조광조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사망하자 이에 충격을 받아 고향에 내려와 ‘소쇄원’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소쇄원은 제월당과 광풍각, 오곡문, 애양단, 고암정사 등 10여 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소쇄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우 아름답다. 모든 건물들이 자연환경을 거의 훼손하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지도록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대 최고의 선비들이 이곳에 와서 여유를 즐겼고 김인후를 비롯해 송순, 정철, 송시열, 기대승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사유와 만남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 소쇄원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뛰어난 건축물 뒤에는 나라를 개혁하고자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자연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양산보의 안타까운 삶이 오롯이 숨겨져 있다. 

특히 담양은 조선시대에 크게 발달한 가사문학의 산실이어서 인문학의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다. 가사문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흥취 또는 유교적 가치관 등을 자유로운 운율에 맞춰 운문 형식으로 지은 것으로, 송순과 정철, 허난설헌 등이 유명한데, 가장 유명하다는 ‘성산별곡’과 ‘사미인곡’을 비롯한 ‘면앙정가’ 등이 모두 담양에서 지어졌다.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소쇄옹 양산보 등이 하향해 문우들과 시문을 논하며 가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던 공간으로, 십여 개의 정자가 담양 일원에 펼쳐져 있다. 담양에서는 식영정, 소쇄원, 면앙정, 명옥헌, 송강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관어정, 남극루 등 10개의 정자를 ‘담양 10정자’로 정하고, 2000년부터 한국가사문학관을 세워 가사문학 관련 문화유산의 전승과 보전에 힘쓰고 있다. 

면앙정 송순은 추월산과 삼인산이 멀리 보이고 영산강의 지류가 바로 아래에 흐르는 면앙정에서 이황과 김인후 등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 내고 ‘면앙정가’를 짓기도 했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관직에서 물러난 송강 정철은 이곳 담양으로 내려와 송강정과 식영정을 오가며 선조 임금에 대한 충정을 이별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에 빗대어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었다. 또 식영정이 있는 성산의 자연 풍경을 노래한 ‘성산별곡’까지 조선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들을 지었다. 식영정 툇마루에 앉으면 멀리 무등산 줄기와 바로 앞의 광주호 그리고 그 앞에 도열한 굵직한 소나무들이 만드는 근사한 풍경에 누구라도 시 한 수 읊고 싶게 만들 듯 싶다. 송강정 역시 영산강 물줄기가 도도히 흐르고, 끝 간데 없이 너른 평야가 마음을 다스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터를 잡아 유교적 가치관에 맞춰 소박하게 집을 짓고 나무를 골라 심었기에 정자 하나하나마다 정취가 있고, 경관이 수려하다. 
 

천년담양 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

■‘담양지명 천년’ 맞아 ‘천년담양 문장’개발
담양은 지금까지 본래의 제 이름을 잃지 않고 장장 1000년을 도도하게 흘러온 지역이다. 참으로 유구한 역사다. 1018년 역사에 등장한 ‘담양’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꼿꼿하게 버티고 단절 없이 2018년 우리의 삶으로 이어진 곳이다. 담양이 찬연한 빛을 가득 안고 새로운 천년을 향한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게 된 연유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담양(潭陽)’이라는 이름이 최초로 사용(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돼 2018년 ‘담양지명 천년’을 맞이한 뜻 깊은 해를 기념했다. 이를 계기로 지속가능한 생태도시와 인문학으로 미래천년을 향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담양·창평이 합쳐져 출발한 담양군은 현재 455.09㎢ 면적에 1읍 11면 304리 601반의 행정구역을 이루고 있다. 또 담양의 품 안에선 5만여명의 군민이 저마다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생태와 인문학이 어우러진 도시, 담양에서는 지명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문장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 이서의 ‘낙지가’의 공통점은 원림과 누정 문화를 자랑하는 전라남도 담양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죽녹원, 소쇄원 등 수려한 자연을 품고 있으며, 가사문학의 산실인 담양은 생태와 인문학으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러한 담양의 2018년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바로 지금의 이름(담양;潭陽)을 갖게 된 지 100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못 담潭’, ‘볕 양陽’자를 쓰는 담양은 ‘깨끗한 물과 넉넉한 볕이 드는 비옥한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담양군은 천년이 된 지명을 기념하기 위해 ‘천년담양’ 문장과 12개 읍·면 문장을 개발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담양의 문화와 특징을 담은 대표 문장을 만들어 천년의 역사를 기념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전국 최초로 읍·면까지 아우르는 디자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또 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담양읍과 11개 면의 문장, 지역의 명칭의 유래, 지형, 특산물, 유적과 문화재를 담았다.
담양읍과 11개 면의 문장, 지역의 명칭의 유래, 지형, 특산물, 유적과 문화재를 담았다.

디자인을 맡은 김현선 소장(김현선디자인연구소)은 담양의 지역 생태와 선비들의 누정문화,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중심에 두는 담양군의 정책을 토대로 ‘천년담양-생태와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다’라는 슬로건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실제 디자인에 앞서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담양군과 함께 면 단위 대표들을 모두 만나고 주민들과 밀접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문장을 완성했다는 설명이다. 담양의 천년과 생태도시를 상징하는 대표 문장과 죽녹원, 소쇄원을 상징하는 두 가지 특화용 문장, 그리고 읍·면을 대표하는 12개 문장이 그것이다. 천년담양 문장에는 인문학의 고장임을 뜻 하는 책과 정자를 그려 넣고 대나무와 산천초목으로 빼어난 담양군의 자연을 녹여냈다. 읍·면에 관한 문장의 경우 시공을 뛰어넘는 각 지역의 콘텐츠를 담았다. 담양읍을 대표하는 자원인 죽녹원과 관방제림, 고려 문화재인 석당간부터 최근 도시재생 사업으로 만든 담빛예술창고까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지역의 요소를 골고루 녹여낸 것이다. 문장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지역명의 유래부터 이 지역에는 어떤 특산품이 나는지,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는지 등 마을 구석구석을 알 수 있다. 즉 이 문장들은 담양의 천년을 기록한 하나의 문화 지도가 된다. 

이렇게 완성된 문장은 읍·면별 문장을 동판으로 제작해 설치하고 읍·면 깃발을 제작해 활용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 읍·면의 정체성을 불어넣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현선 디자이너는 “지역자치단체 문장은 형식적인 이미지로 어떤 지역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하며 “담양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지역을 구성하는 실제 요소들을 직접적인 이미지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최형식 담양군수는 “담양 지명 천년을 맞아 탄생한 문장은 담양의 역사를 반추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함축한 문화적 소산”이라며 “무엇보다도 디자이너만이 아닌 군민과 함께 만들어 낸 결과라는 점에서 과정 또한 빛나는, 공공디자인의 수준을 높여준 프로젝트가 됐다”고 말했다.
‘담양 지명 탄생 천년’을 맞아 탄생한 ‘담양군의 천년문장’은 의미로 점철된 상징물이 아닌 본질적 가치에 충실한 디자인이자 역사를 반추하고 지역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함축한 문화적 소산임에 틀림없다.

 

<이 기획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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