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견디게 하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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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견디게 하는 한 사람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11.05 08: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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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어둠을 싫어한다. 어두움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상황에서 경험했던 공포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생명의 위험을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해서 억압됐던 감정은 어두운 환경과 만날 때 공포로 귀환한다.

G는 40세 남성으로 미혼이다. 지금까지 1년 이상 근무한 직장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 일하는 곳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퇴근 후 스마트폰으로 폭력성 게임을 하면서 몸을 씻고, 밥을 먹는다. 그대로 게임을 하다가 몇 시간 자고 일어나서 또 게임을 한다. 꿈에서도 게임이 자주 나타난다. G는 현실보다 게임 속 세상이 편안하다. 게임의 세상에서 강해지고 인정받기 위해 수천만 원의 게임 아이템을 현금으로 구매하고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게임은 G의 건강도 해쳤다. 눈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장애등급을 받았고, 손목과 무릎은 염증으로 통증이 있으며, 목과 허리는 디스크가 악화돼 고통을 받고 있다. 게임은 G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쳤다. 5~6년 전에는 조울증 진단을 받은 후 자살 충동을 경험하기도 했다.

G는 어린 시절부터 PC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폭언을 듣고, 자주 매를 맞았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겨울, 발가벗긴 채 집에서 쫓겨난 적이 있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딸의 옷을 입혀줬다. 여자 옷을 입고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주머니의 딸의 눈동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런 수치의 기억들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무서워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시골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댁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 때 G는 회오리처럼 밀려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온 몸이 마비되는 것 같다. 불안과 두려움은 G의 일상이 됐다. 성적은 최하위권이었지만 조퇴나 결석은 하지 않고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네 친구로부터 현재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가출해서, 나쁜 행동을 많이 하고 말았다. 현재 G는 침대 옆에 쇠망치를 두고 잠을 잔다. 작은 부스럭 소리에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누군가 자신을 해칠 것 같아서 쇠망치를 손에 꽉 쥔 채 다시 잠을 청한다.

정신분석가이며 정신과 의사인 에릭 번스타인(Eric Bernestein)은 개인이 관계하는 행동, 사고, 느낌의 반복되는 패턴을 라켓 감정(Racket Feeling)이라고 정의했다. 특히 라켓 감정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친숙한 정서로 아동기에 학습되고, 주변 사람들이 부추긴 정서이며, 성인으로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부적합한 정서라고 했다. 특히 플래시백 기억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를 정서적으로 기록한다. 
이 플래스백 기억들은 침입적이고 반복적이며 개인의 통제 밖에서 일어난다.
G는 어머니와의 이별의 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또한 어머니가 왜 자신을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의식이 이해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그 상처를 기억한다. 

몸에 저장된 측량할 수 없이 커다란 고통은 G를 힘들게 하고 있다. 
또한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집에서 쫓겨났던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한다. 상처받은 G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보다 힘이 세고 강하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을 G는 가상 세계의 폭력적인 게임을 통해서 표출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와 세상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현재 자신은 건강도 잃었고, 할 수 있는 기술도 없고, 학력도 번번치 않으며, 갚아야 할 빚만 쌓여 있다고 한탄한다. 삶이 너무 힘들 때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르지만 자신에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여동생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며 살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자신의 삶이 너무 억울해서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에 상담을 신청했고, 휴가를 내어서 상담실에 오게 됐다. G의 소원은 게임 때문에 진 빚을 갚고, 혼자 살아도 빚이 없이 월세방이 아닌 전세방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G는 공포 라켓 감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G는 용기를 내어 상담실을 찾았다. 그러나 G는 경제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휴가를 내고 상담실에 올 수 없어서 다른 형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을 연계했다. 나는 G와 상담을 하면서 처절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을 살게 하는 한 사람의 힘을 느꼈다. 여동생은 G를 살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다. 여동생의 지지와 격려가 G를 살아 있게 한다.

이 순간, 당신을 살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살기 위해 당신의 따뜻한 지지와 격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최명옥<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박사·칼럼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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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만 2020-11-06 15:56:34
기사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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