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고산사(高山寺) 대광보전(大光寶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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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고산사(高山寺) 대광보전(大光寶殿)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20.11.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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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 100경 〈25〉

국가지정 보물 제399호

고산사(高山寺)는 홍성 결성면 무량리 나지막한 청룡산(230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규모가 작은 절이다. 이 절에는 대광보전과 요사채, 모서리가 깨져 애처로운 삼층석탑만 있을 뿐 비교적 한적하기만 하다. 대광보전(大光寶殿) 건물은 조선 초기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보물 제399호로 지정됐다. 대웅전은 고산사의 주불전으로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심포계 팔작집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으나, 건물 밖에는 ‘대광보전(大光寶殿)’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어 불상과 불전의 명칭이 일치하지 않는다. 왜 다른지는 알 수가 없다. 대광보전은 본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건물이므로 후대에 불상이 석가모니불로 바뀌면서 대웅전으로 불렀을 가능성도 있다. 

고산사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으로 이뤄진 작은 사찰이다. 높은 축대 위에 대웅전이 중앙에 있고 좌우측에는 각각 요사채가 대웅전과 향을 약간 달리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집으로 자연석을 허튼층쌓기 한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과 측면은 각 3칸으로 칸수는 같으나 정면의 기둥 사이가 조금 넓은 편이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그 위에 약간의 배흘림 또는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창방을 결구해 고정시켰으며 주심포집임에도 불구하고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공포를 올렸다. 공포는 헛첨차가 없는 주심포 형식이다. 주두는 평굽으로 굽받침이 없으나 소로는 굽받침이 있는 것을 사용했다. 주두 위에는 첨차를 십(十)자 형태로 짜고 그 위에 2제공과 포중방을 결구했다. 2제공은 건물 내부에서 보아지 역할을 한다. 2제공 위에는 소로를 놓아 3제공과 출목첨차를 받게 했는데, 정면과 배면에서는 보머리가 가늘어지면서 3제공이 된다. 3제공 위에는 소로를 놓아 우미량 뺄목과 외목도리를 받치도록 했다. 공포는 첨차와 살미(山彌)의 형태, 부재의 구성 등이 고려시대의 건물인 예산 수덕사의 대웅전(국보 제49호)과 거의 유사하다.

가구 구조는 건물의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7량 형식이다. 대들보는 보머리를 가늘게 해 공포와 함께 결구했고, 대들보 위에는 포대공을 짜서 우미량을 결구했다. 우미량 위쪽에는 직선재인 계량을 두어 하중도리와 함께 결구했으며, 계량 위에는 주두를 놓아 종보와 중도리를 받도록 했다.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다. 건물 내부에는 마루를 깔고 불단을 조성했는데 석조 팔각연화좌대(石造八角蓮花座臺)를 놓고 그 위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했다. 불상 상부에는 2층 구조의 화려한 닫집을 설치했다.

고산사 대웅전은 우리나라 주심포 건축물로는 보기 드문 팔작집이다. 공포의 구성과 건축 수법은 전체적으로 주심포집의 건축 수법을 따르고 있지만 창방(昌枋) 위에 평방(平枋)을 놓고 공포를 짜 올린 것과 우물반자를 설치한 것 등은 다포집의 건축 수법을 반영한 것이다. 이 건물은 다른 건축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규모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7량 구조를 취했고, 귀공포 안쪽에는 추녀와 직각방향으로 귀첨차를 사용했다. 또한 팔작집임에도 불구하고 우미량을 사용했으며, 종보와 우미량 사이에는 계량을 결구했다. 외목도리의 단면 형태도 특이하다. 고산사 대웅전은 주심포계 건축물로 다포계 건축물의 수법도 일부 반영하고 있는 등 구조와 양식이 특이한 불전이다. 건축 기법을 볼 때 조선 초기의 건물로 추정되나, 우미량을 사용한 것과 첨차 하부의 연화두형(蓮花頭形: 쌍S자형 곡선) 초각, 굽받침이 있는 소로 등에서는 고려시대의 건축 기법도 나타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고산사는 신라 때 창건됐다고는 마지만 사적기(事蹟記) 등 관련 기록이 거의 없어 언제 창건됐는지는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사찰에 남아 있는 3층 석탑과 석조여래입상 등을 볼 때 고려시대에 창건됐을 가능성이 크다. 대웅전은 건축 기법을 볼 때 조선 초기의 건물로 판단되나 창건과 이후의 변화를 알기는 어렵다. 다만 지붕 암막새에 기록된 글씨를 통해 1626년(인조 4)에 중수됐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1973년에 해체 보수했고, 1990년에는 계단과 석축을 보수하고 기와를 교체했다. 2000년에도 기와를 다시 교체하는 등 부분적으로 보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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